[데스크의 눈] 건방 떨지 않을 후보를 찾는 선거

선출직에 당선증은 훈장 아닌
주민이 잠시 맡긴 권한의 증서
거창한 약속에 현혹되지 말고
불편함을 대하는 태도 지켜봐야

“이 상 받았다고 건방 안 떨 테니 계속 불러주십시오.”

배우 유승목의 수상 소감은 길지 않았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백정태 상무를 연기해 제62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은 자리였다. 오랜 무명과 조연의 시간을 지나, 데뷔 이후 처음 백상 후보에 올라 받은 첫 수상이기도 했다.

이귀전 정치부장

말은 짧았지만, 오래 버틴 사람이 마침내 박수를 받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자신을 단속했다는 점에서 묵직했다. 수상 소감에는 대개 정해진 문법이 있다. 제작진과 동료,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한다. 유승목은 그 익숙한 서사에 자신을 향한 경고를 끼워 넣었다. 상을 받은 사람이 먼저 의식한 것은 박수의 크기가 아니라, 박수 이후의 자신이었다.



사람은 인정받는 순간 흔들리기 쉽다. 배우에게 상이 그렇다면, 선출직에게 선거 승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름 앞에 직함이 붙고, 일정에는 의전이 따른다. 어제까지 부탁하던 사람이 오늘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 앉는다. 그 변화 앞에서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빠르게 달라진다.

6월 3일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낮춰 보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때의 겸손은 가장 흔한 선거운동 기술이기도 하다.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허리의 각도가 아니다. 불편한 질문 앞에서도 그 태도가 유지되는지다.

선거 기간에는 누구나 친절하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 얼굴이 굳는지, 반대 의견을 듣다가 말을 끊는지, 지역 현안을 제 말로 답하는지 봐야 한다. 전화를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당선 뒤 비서와 참모 뒤로 숨는 경우를 유권자는 많이 봐왔다. 전화를 피하는 정치인은 민원도 피하고, 결국 주민을 피한다.

지방선거는 주민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선거다. 버스 노선, 학교 앞 안전, 골목상권, 돌봄, 개발 민원 같은 문제가 지방정치의 손끝에서 달라진다. 그래서 후보의 태도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말투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다. 주민의 항의를 민원 소음으로 들을 사람인지, 반대자를 설득할 상대로 볼 사람인지가 여기서 갈린다.

건방은 큰소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더 자주 보이는 건 점잖은 오만이다.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떠나는 것, 지역 민원에 “검토하겠다”며 구체적 답을 피하는 것, 지역 현안을 중앙정치 구호로 덮는 것, 당의 공천장을 주민의 검증보다 앞세우는 것이 그렇다. 선거운동 중 이미 주민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당선 뒤 주민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관리하려 든다.

정당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공천장을 줬다고 후보가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당 간판이 지역의 삶을 대신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지방선거는 정권 심판만으로 치를 수 없다. 재보궐선거 역시 “탈환”과 “심판”의 말로만 밀어붙이는 순간 지역은 사라지고 전선만 남는다.

좋은 후보를 고르는 일은 위험한 후보를 걸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실력이 부족한 후보도 문제지만, 더 위험한 것은 이미 오만한 후보다. 모르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오만한 사람은 듣지 않는다. 정책을 모르는 후보보다 더 곤란한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후보다.

유승목의 말이 정치판에 와 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상을 받고도 자신을 먼저 의심했다. 정치인에게도 그 정도의 자기 경계는 있어야 한다. 당선증은 훈장이 아니라 주민이 잠시 맡긴 권한의 증서다. 맡긴 것을 가진 것으로 여기는 순간, 지방권력은 주민에게서 멀어진다.

잘하겠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중요한 것은 권한을 받은 뒤에도 함부로 하지 않을 사람인가다. 마지막 일주일,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더 큰 약속이 아니라 더 작은 태도다. 말이 막혔을 때, 반대를 만났을 때,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할 때 드러나는 표정이다. 선거운동의 말은 며칠 뒤면 사라지지만, 그때 드러난 태도는 임기 내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찾아야 할 사람은 적어도 이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다.

“건방 떨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