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례 결재 누구도 문제제기 안 해… “내부 역사적 민감성 부재” [스타벅스 사태 후폭풍]

신세계 ‘탱크데이 논란’ 조사결과

기획안 대표이사까지 버젓이 통과
일부는 첨부파일도 안 열고 사인
속도전에 법무팀 검증절차도 생략
신세계 측 “마케팅 검증체계 결함”

수익성만 좇다 내부 통제는 부실
유통업계 고질적 관행에 ‘경종’

스벅 선불충전금 전액 환불키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파문과 관련해 신세계그룹이 26일 발표한 자체 진상 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사태는 젊은 실무진의 단순한 실수나 우연에서 일어난 게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내부의 빈약한 역사 인식과 수익 지상주의에 급급한 마케팅 전략, 단계별 점검 절차를 무력화한 관행 등이 결합해 벌어진 ‘예고된 사태’였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회사는 논란이 벌어진 다음 날인 19일부터 스타벅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모습. 연합뉴스

이번 자체 조사는 해당 이벤트가 특정 목적을 갖고 고의로 기획됐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데 집중됐다. 조사 결과, 커머스팀에서 제안한 이번 마케팅 행사는 직원 5명이 기획했고, 팀장과 기획담당, 전략기획본부장, 대표이사의 결재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기획자가 올린 기안을 팀장이 검토하고, 담당과 본부장 보고에 이어 대표가 최종 승인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부사장은 “그 누구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안 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마케팅 기획과 승인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문제 제기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할 만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어울리지 않는 마케팅 아이디어가 버젓이 통과된 것이다. 스타벅스 내부의 역사적 감수성과 통제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이번 마케팅 기획안 승인자 중 일부는 해당 마케팅 디자인 시안이 담긴 메일의 첨부 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젊은 직원들은 파문 확산 초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언행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 부사장은 “이번 사안은 실무자의 과실 여부를 넘어서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민감성 부재를 드러냈다”며 “마케팅 검증 및 리스크 관리 체계에 심각한 결함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실적에만 매몰된 기업 문화와 관련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종 업계에서 압도적 1위인 스타벅스가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공격적 마케팅을 하다 보니 실무자들이 브랜드 가치나 사회적 파장보다 당장 단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홍보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신세계그룹 조사에서 스타벅스가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한 결과, 과거 진행하던 법무팀의 검증 절차도 생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부사장은 “저희가 이번에 반성하는 부분은 (스타벅스코리아가) 매출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어떤 날짜라든가, 이런(5·18) 의미가 주는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결재 라인 담당자들도) 합의된 기안지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전자결재다 보니 관행적으로 사인하고 지나간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신세계그룹 임원들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세계그룹 이규봉 경영지원총괄 전무, 전상진 경영총괄 부사장, 김수완 대외협력본부장 부사장, 양종환 감사팀장 상무. 연합뉴스

신세계그룹의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유통업계를 비롯해 다른 많은 기업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만 좇다가 리스크를 관리하는 내부 점검·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렵게 쌓아올린 기업 위상과 가치가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마케팅이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등 기업 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뿐만 아니라 유통기업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질병인 ‘속도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윤리·역사적 민감성에 대한 검증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스타벅스코리아는 다음 달 1일부터 14일까지 고객 요청 시 스타벅스 카드 선불충전금을 전액 환불해주기로 했다. 그동안 스타벅스 카드 이용약관에 따라 충전금액의 60% 이상 사용해야 나머지 40%를 환불해줬지만 2주간 스타벅스 카드를 보유한 고객은 사용금액에 상관없이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