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수가 현실화 없이 일차의료 지킬 수 없다

감기 걸렸을 때, 혈압약이 떨어졌을 때, 아이가 열이 날 때 망설임 없이 동네의원을 찾는다. 예약 없이도 당일에 볼 수 있고, 걸어서 갈 수 있고, 오래 일한 원장이 기억해 준다. 이 당연한 일상이 사실 세계 어디서도 쉽게 누리기 어려운 의료접근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동네의원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겉에서 보면 잘 모를 수 있다. 오늘도 진료실 불은 켜져 있고, 대기실에 환자가 앉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의원의 실질 소득은 지난 10년간 사실상 뒷걸음질 쳐왔고, 물가와 최저임금이 4∼10% 오르는 동안 의원급 수가는 1~2% 인상에 묶여 있었다. 고물가, 고금리 속에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도 오르고, 중동전쟁 여파로 의료소모품 값까지 덩달아 뛰었다. 늘어난 건 비용뿐이고, 건강보험이 의원에 지급하는 진료 대가(수가)는 그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조정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겸 보험이사

특히 심각한 것은 환자들이 가장 자주 찾는 진료과들이다. 대한개원의 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내과는 2013년 대비 실질 수입이 마이너스 2.4%, 소아청소년과는 마이너스 9%, 이비인후과는 마이너스 10% 수준이다.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는 소아청소년과, 감기∙중이염으로 찾는 이비인후과, 만성질환을 평생 관리해주는 내과가 사실상 10년 넘게 뒷걸음질 쳐온 셈이다. 버티다 못해 문을 닫는 곳들도 속출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매년 5월 말을 기한으로 병원∙의원∙약국 등과 이듬해 진료 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협상한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은 2022년 2.09%에서 2026년 1.93%까지 내리막을 걸었다. 공단은 늘 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현재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30조원에 달하는 데다 그간 법을 어기고 미지급된 국고지원금 규모도 21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재정 지출 구조를 방치하면서 추가 소요 재정 확장에 투입할 재원이 없다며 의료기관에만 허리띠를 조르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혈액검사∙소변검사 등 각종 검사 비용 체계까지 올해 하반기 개편된다. 동네의원은 지금껏 이런 검사들을 통해 여러 질병을 초기에 잡아왔다. 수가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동네 주치의의 역할이라 여기고 해온 일이다. 그런데 개편 이후 검사 한 건을 할 때마다 적자가 난다면 이 검사들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의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검사를 제때 하지 못해 병을 일찍 발견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국민건강의 최일선을 지키는 파수꾼과도 같은 일차의료가 약화하면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까지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진다. 대형병원이라고 쉽게 갈 수 있나? 중증질환 위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문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질환의 중증도를 판별하는 일차의료의 역할은 의료전달시스템상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동네의원을 살리는 것은 의사를 위한 일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일이다. 

 

이달 말 결론이 날 협상이 현장의 무게를 감당하는 결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아프면 언제든 걸어서 갈 수 있는 그 의원의 문이 내일도 열려 있으려면, 지금 이 협상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일차의료를 지킬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정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겸 보험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