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올해 삼성전자 임금협상이 마무리됐지만, 노사가 오랜 기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줄다리기를 한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6개월가량 이어진 내부 갈등과 노조의 총파업 으름장에 반도체 공장이 ‘셧다운’ 위기까지 몰리며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사이 주요 경쟁사가 삼성전자의 내홍을 틈타 치고 나간 장면이 연출됐고, 후발 주자들도 맹추격에 나섰다. 이번 성과급 합의안을 두고 삼성전자 비반도체 사업부와 계열사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도 걱정거리다. 이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전에는 이재용 회장 등 경영진이 강조한 ‘원팀, 한 가족’이란 내부 단합이 쉽지 않고 각 노조에서 비슷한 유형의 ‘성과급 요구 및 투쟁’이 잇따를 수 있어서다.
◆삼성 위기 틈타 치고 나간 경쟁사들
2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라이벌 업체인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은 수십조 원 단위의 투자계획을 밝히며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TSMC는 올해 설비 투자를 최대 560억달러(약 83조9160억원)까지 늘릴 방침이다.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과감한 투자로 장기 성장 기회를 잡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점유율 60∼70%를 차지하는 위탁생산 사업의 절대 강자다. 점유율이 9∼10%에 머무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테슬라와 애플, 엔비디아 물량을 잇따라 수주하며 탄력을 받았는데 이번 파업 위기로 기세가 잠시 주춤해졌다. 삼성전자의 추격에 긴장하던 TSMC는 삼성전자가 노사 갈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발 빠르게 투자계획을 수립하며 치고 나갔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3위 마이크론은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250억달러(약 37조4624억원) 이상으로 제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삼성전자를 잡겠다는 목표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중국 업체들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바짝 따라붙고 있다. D램 기업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낸드플래시 분야 강자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CXMT는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5%를 기록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아직 선두권에 한참 못 미치지만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삼성전자의 어수선한 국면에 추격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화웨이는 중국 국영 파운드리 기업 SMIC와 손잡고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도전장을 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극한 최적화를 통해 2031년까지 물리적 1.4㎚(나노미터, 1m의 10억분의 1)와 1.2㎚급 칩과 유사한 성능의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TSMC에 밀려 고전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화웨이의 거센 도전에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내부 결속 중요한 시기에 내홍 여전
그 어느 때보다 삼성전자 구성원들의 각성과 경쟁력 제고 의지가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하지만 임금협상 타결에 따른 노사 갈등 봉합에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금교섭 과정에서 소외된 모바일, 가전, TV를 제작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들은 물론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내에서도 비메모리 담당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특히 DS 쪽의 실적이 어려운 시절에 투자 등을 뒷받침했던 DX 부문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DS 부문은 메모리 파트의 경우 최대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고, 파운드리 등 적자를 본 비메모리 파트도 억 단위 특별보상금을 수령한다. 하지만 DX 부문은 600만원 규모의 자사주를 받는 데 그친다. 메모리 사업부와 DX 부문 직원 간 성과급 규모 차이는 최대 100배에 달한다.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DS 부문 조합원이 주축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초기업노조와 DX 쪽 직원이 대부분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찬성률이 대조적이었던 이유다. 삼성전자 제3노조로 DX 부문이 주축인 ‘동행노조’는 아예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26일 수원지법에 찬반투표 절차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동행노조는 당초 2600명 규모였지만 투표 저지를 위해 가입자가 몰리면서 현재 1만3000여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 부문장(사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최근 임금협상 과정과 결과로 많은 분이 소외감과 박탈감, 회사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며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가결 직후 반발 여론이 거센 DX 부문 달래기에 나섰다. 노 사장은 “지금 DX 부문이 처한 사업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은데도 여러분이 각자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역할을 다해주고 계시기에 DX 부문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와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또 사장단 명의 메시지를 통해 2, 3차 중심의 중소 협력사 지원과 산업재해기금 조성, 취약 계층과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포용적 금융 확대, 인공지능(AI) 인재 육성을 위한 산학협력, 청소년 교육 등을 하기로 했다. 사장단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노사관계는 물론 경영 전반을 깊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