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연구원 등이 공동 주최한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와 전망’ 심포지엄에서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구조적 변화의 증거가 강하게 발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 10년간 평균 수익률이 전국 아파트는 3.79%, 코스피는 5.47%로 각각 나타났다는 분석과 함께 가계 자산구조를 금융투자상품 중심으로 전환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제시됐다.
이 심포지엄이 주목받은 배경에는 한국 증시의 역사적 질주가 있다. 코스피는 지난 15일 장중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돌파했다. 올해 첫 거래일 4309.63으로 마감한 지수는 1월22일 5000, 2월25일 6000, 5월6일 7000을 차례로 넘어섰고, 7000에서 8000까지는 단 8거래일이 걸렸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지난 1~3월 4000조원대에서 6728조원(27일 현재)으로 불어났다. 단기 변동성은 컸으나,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지수라는 숫자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이익 체력과 자본시장 제도의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내 상장기업의 이익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증권가에 따르면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순이익 추정치는 600조원 중반대까지 상승했고,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 초반에 머물러 있다. 한국 증시의 역사적 평균 PER이 10~15배를 오갔던 점을 고려하면, 지수 8000이 이익 펀더멘털보다 과대평가된 수치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저평가에 시달려 왔다. 원인은 단순했다. 기업의 성장과 이익이 일반주주의 가치 제고로 이어진다는 신뢰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이재명정부 출범 후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이 추진 또는 성사됐다.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을 국제 기준에 맞는 투명하고 신뢰가능한 수준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리모델링에 가깝다.
그 중심에 상법 개정이 있다. 지난해 7월22일 시행된 1차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해 경영진과 이사회가 지배주주만이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의식하도록 했다. 같은해 8월 본회의를 통과한 2차 개정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확대해 소수 주주가 이사회를 견제할 수단을 마련했으며, 오는 9월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가장 최근의 변화인 3차 개정은 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지난 2월25일 본회의를 통과해 3월6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그동안 자사주는 주주환원 수단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강화 도구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3차 개정은 자기주식을 미발행주식으로 보아 의결권·배당권 등을 제한하는 한편 취득 후 원칙적으로 1년 내 소각하도록 함으로써 일반주주 보호와 자본충실의 원칙을 동시에 도모했다.
상법이 기업 지배구조의 기본 체질을 바꿨다면, 이제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거래의 공정성을 채우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당내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를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로 개편한 바 있다.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특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뿐만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1년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이재명정부 5년 내내 계속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의 핵심은 합병·분할·상장 과정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민주당 김현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현행법은 상장회사 합병가액을 산정할 때 시장 주가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데, 이 개정안은 자산 및 수익 가치, 미래 성장성 등을 종합 반영하도록 했다. 2024년 논란이 된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처럼 왜곡 지적을 받는 합병가액 산정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다. 여기에 더해 2년 연속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서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 인수자가 지배주주에게서 사들인 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일반주주 지분도 매수하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등이 정무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주주총회 제도 개선도 본격화하고 있다. 여당은 주총 소집통지 기간을 현행 2주에서 최대 4주로 확대하고, 사업·감사보고서 공시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안건 통지 기간이 가장 짧은 축에 속하는데, 일본은 관련 안건을 3주 전에 전자 공시한다. 통지 기간이 짧아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가 안건을 충분히 검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들 변화는 서로 분리된 정책이 아니다. 상법 개정은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고, 자본시장법 개정은 투자자 권리를 강화하며, 공정한 합병가액 제도는 시장 신뢰를 높인다. 세 축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한국 자본시장은 ‘이익 기반 성장’과 ‘투자자 신뢰’라는 두 퍼즐을 동시에 완성할 수 있다. 특히 해외 기관투자자 유치에 이런 제도 개선은 결정적이다. 글로벌 자금은 기업 실적만이 아니라 시장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 수준까지 함께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개혁은 단순히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 정책이 아니다. 자본이 부동산 중심 구조에서 생산적 금융과 혁신기업 투자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장기적 체질 개선에 가깝다.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분석에 따르면 위험 대비 수익률을 나타내는 샤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아파트가 코스피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위험을 조정하면 여전히 부동산이 주식보다 매력적으로 인식되는 구조라는 의미다. 이에 따른 자금 쏠림을 풀려면 금융투자상품의 장기 보유 매력을 높이는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심포지엄의 결론이었다.
시장은 이미 응답하고 있다. 거수기에 머물던 이사회는 책임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바뀌는 사이 자사주는 지배력 강화 수단이 아니라 실질적 주주환원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증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를 발판으로 영국·캐나다·대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8000포인트는 도착점이 아니라 통과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에 기업 성장과 주주가치, 시장 신뢰가 함께 움직이는 코리아 프리미엄의 시대가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지난 1년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은 그 전환을 떠받치는 제도적 토대였다.
김정훈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UN SDGs 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