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치러지는 미국 연방의회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 대한 전국적 국민투표로 여겨진다.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하는지, 아니면 민주당에 다수당 지위를 박탈당하는지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2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결정될 전망이다.
중간선거를 5개월여 앞둔 현재 미국 정치를 가장 달구는 것은 ‘게리맨더링(선거구 재획정) 전쟁’이다. 상원은 각 주 전체가 지역구이며 주마다 2석이 배분되지만, 하원의 경우 주마다 인구수에 따라 의석이 다르게 배분되며 지역구가 따로 나뉘어 있다. 이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은 주의회의 권한이다. 유권자에게 표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직접 각 주의 정치적 우위를 활용해 선거구를 자당에 유리하게 바꾸는 방식으로 선거에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공화당 우세인 텍사스에선 민주당 의석이 크게 줄어들 수 있고, 민주당 우세인 캘리포니아에선 공화당 하원의원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여러 주에서 승자독식 구조가 강화되며,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이번 중간선거 이후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성 위기 불러오는 게리맨더링
주의회가 선거구를 획정할 권한을 가지면서 게리맨더링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있었다. 미국 각 주는 인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10년마다 선거구를 다시 그려왔다.
양당이 전격적으로 선거 전 게리맨더링 전쟁에 뛰어든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9년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게리맨더링은 연방 법원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연방대법원이 소수인종의 투표권 보호를 위해 특정 지역의 선거구 변경을 연방정부가 사전에 심사하도록 한 투표권법의 핵심 조항을 지난해 사실상 무력화하는 판결을 내린 것도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교한 선거구 획정이 가능해진 것도 게리맨더링 ‘열풍’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양당은 중간선거 이후에도 새로운 선거구 지도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다음달 특별 입법회기를 소집했는데, 공화당이 2028년 선거에서 하원 의석을 한 석 이상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게리맨더링의 수순이다. 민주당 우세인 콜로라도에서도 민주당과 연계된 단체가 민주당 의석을 3석 더 늘릴 수 있는 안건을 올해 하반기 주민투표에 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30년 인구조사를 통해 모든 주가 선거구를 새로 그리게 되면 게리맨더링은 다시 한 번 미 전역을 휩쓸 전망이다. 이번 중간선거 이후 확보되는 데이터도 게리맨더링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게리맨더링은 ‘정당성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멀리 떨어진 지역 유권자들이 인위적으로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버리면서 미국 정치가 대표제라는 개념에서 멀어진다는 얘기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각 주를 기준으로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득표율이 떨어지더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존재해왔는데, 의회에서도 전국 득표율이 뒤지는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분석가 숀 트렌드는 “선거구라는 것은 원래 지역과 장소가 중요하다는 전제 위에 존재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 원칙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처드 필디스 뉴욕대 법학 교수도 “이 모든 과정은 미국인들을 민주주의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시스템이 조작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