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을 만드는 ‘핵추진잠수함 기본계획’을 26일 발표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잠수함사령부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핵잠 건조와 관련, “2030년대 중반 1번함을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 이후 전력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핵연료는 저농축우라늄(LEU)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부터 자료 수집 등의 사업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도 예산으로 현재 150억원이 책정됐으나, 정부 및 국회 심의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을 주관하고, 잠수함 설계·건조 경험이 풍부한 한화오션 등이 시제업체로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에서 전력화까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핵연료 확보까지 첩첩산중
기본계획에 따르면, 핵잠은 국산 원자로를 사용하고 핵연료는 농축도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을 쓴다. 핵연료 교체를 최소화하는 장주기 운전을 추구한다.
이론적으론 핵확산 우려를 덜고, 운용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저농축우라늄 핵연료를 들여오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미국·영국은 농도가 93%인 고농축우라늄을 핵연료로 쓴다. 미국과의 협정을 통해 핵연료를 공급받으려고 해도 미국에서 조달하기가 어렵다.
핵추진잠수함용 저농축우라늄 핵연료를 만들고 실제 사용한 경험이 있는 곳은 프랑스뿐이다.
프랑스의 최신 핵잠인 쉬프랑급 등에 쓰이는 저농축우라늄 핵연료는 농축도가 6% 수준이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이를 수출한 적이 없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성장한 K방산을 경계하는 기류가 있다”며 “(기술)이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국내 생산도 쉽지 않다. 같은 저농축우라늄이라도 민간 원자로용과 핵잠용 핵연료는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민간 원자로용은 농축율이 1.5∼4%다. 현재 쓰이는 핵잠용은 6∼7% 수준이며, 원자로용보다 밀도가 높다.
핵잠 원자로는 비좁은 선체 안에 설치된다. 따라서 극한의 소형화와 고출력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프랑스 쉬프랑급 핵잠 원자로는 8.8m 직경의 선체 내부에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작지만 150㎿의 출력을 낸다.
6∼7% 농축율을 지닌 저농축우라늄 핵연료로 높은 출력을 얻으려면, 우라늄 밀도를 상업용 핵연료보다 훨씬 높여서 낮은 농축율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밀폐된 환경과 충격 대비 등 전투용 적합성 충족 요소도 추가된다.
이 모든 것을 달성하려면 개발·시험·검증에 10∼15년이 필요하다. 기본계획상 1번함 진수 시점을 맞추기도 빠듯하다.
핵연료 교체 최소화를 위한 장주기 운전도 난제다.
프랑스 쉬프랑급 핵잠은 농축율 6% 수준의 저농축우라늄 핵연료를 쓴다. 따라서 10년마다 재급유를 한다. 이는 재급유 관련 비용 증가와 잠수함 전력공백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
대안으로는 농축율을 19.75%까지 높인 고밀도 저농축우라늄 관련 신기술과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같은 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하면 잠수함 운용 기간 재급유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기술은 선진국에서도 개발 단계다.
19.75% 수준의 농축율에 대한 정치적 논란 가능성도 있다.
이 정도의 농축율을 지닌 핵연료는 민간 원자로용 핵연료보다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만들기가 훨씬 쉽다.
정부가 핵비확산 기조를 강조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초래할 수 있다.
◆예산 증가폭 예측 어려워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핵잠 사업에 28조9000억원(추정치)이 소요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예산 지출이 요구될 가능성도 있다.
선진국의 경우 핵잠 사업에서 비용 초과는 고질적 문제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미 해군 컬럼비아급 전략핵추진잠수함 사업에서 비용 증가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호주의 오커스(AUKUS) 총예산도 계속 늘어나는 모양새다.
상세설계와 엔지니어링 비용에 조선소와 해군기지 확충, 공급망 구성, 인력 보강 등 산업기반 구축 비용이 추가되는 것에 원인이 있다.
핵잠은 일반 잠수함보다 설계·가공·검증 난도가 높다. 선체 제작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소를 대대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실제로 호주는 오커스 잠수함을 만들 오즈번 조선소에 39억 호주달러(약 4조원)을 착수금으로 투입한다. 총비용은 300억 호주달러(30조7000억 원)에 달한다.
한국은 호주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오커스는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핵연료로 쓰지만 한국형 핵잠은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한다.
운용 도중 핵연료를 최소 1회는 교체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냉각·저장 시설이 추가된다.
핵연료 보관 시설, 핵연료 장전 작업이 이뤄질 원자로 통합·설치 구역,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및 IAEA의 감시 체계, 원자로 시험 시설 구축도 필요하다.
배관·전기 등의 공사 시설까지 합치면 조선소 보강에만 수십조원이 소요될 수 있다.
핵잠이 머물 해군기지에 유지·보수 시설을 구축하는 비용도 크다.
호주는 서부 퍼스의 스털링 해군기지 주변에 10년간 120억 호주달러(12조3000억원)을 투입, 오커스 핵잠 유지·보수 단지를 건설한다. 한국도 이같은 예산 지출이 불가피하다.
인력 양성·운영비도 추가로 필요하다.
건조인력은 용접, 정밀가공, 원자로 관련 품질관리, 시스템 통합, 정비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특히 핵공학 지식이 필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원자로 관련 인력과 핵 안전 전문가다.
상업용 원자로는 크기의 제약이 적지만, 잠수함용 원자로는 비좁은 선체에 설치된다.
따라서 원자로 격실 구조를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핵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같은 인력은 기존 조선소와 해군에선 양성된 적이 없다. 새로 키워야 한다.
석사 과정 이상의 핵 공학 교육을 받은 기계·전기·구조 엔지니어와 용접·배관공 등 기능직 인력도 필요하다.
운영인력도 일반 잠수함 승조원보다 숙련도가 훨씬 높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수학·물리·화학·열역학·전기·기계·핵 등의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사관은 공학 학위와 핵공학 석·박사 학위를 갖춘 상태에서 잠수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자로를 책임지는 기관장은 더 오랜 기간에 걸친 교육·훈련이 요구된다. 병사조차도 일정 수준의 핵 관련 지식과 기술을 갖출 필요가 있다.
기존 잠수함사령부에서 인력을 차출해 핵 관련 교육을 하면 인력 수급이 쉬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으나, 어려움이 많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지난해 해군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잠수함 승조원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다. 2022년 90명, 2023년 71명, 2024년 80명 등 241명이 전역(조기전역 및 승조자격 해제)했다.
잠수함 승조원은 하루 근무시간이 12시간에 달하고, 1회 출동 시 3∼4주간 외부와 단절되는 등 열악한 근무 여건이 이탈 원인으로 꼽힌다.
핵잠은 일반 잠수함보다 더 오랜 기간 출동하고, 일일 근무시간도 더 늘어날 수 있다. 거액을 들여 힘들게 양성한 핵잠 운용인력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군이 일반 잠수함은 핵잠과 별도로 5500t급 장보고-Ⅲ 배치Ⅲ 잠수함, 노후한 장보고-Ⅰ을 대체할 장보고-Ⅳ 잠수함 건조를 추진중이다.
따라서 조선소의 잠수함 건조 인력과 해군 승조원 다수를 그대로 남겨놓은 채 새롭게 핵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교관 인력 확보와 승조원 훈련 및 기술 검증용 지상 원자로 시제품 건설까지 감안하면, 핵잠 총비용은 호주의 오커스처럼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군사적 효용성도 논란
해군은 3척 이상의 핵잠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다만 실제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고농축우라늄 핵연료는 운용기간 동안 핵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3척으로도 작전이 가능하다.
반면 저농축우라늄은 1회 이상 핵연료를 재급유해야 한다. 재급유 과정은 최대 수 년이 걸린다. 그동안 핵잠 1척은 조선소에 발이 묶인다. 따라서 4∼5척 이상의 핵잠이 필요할 수 있다.
조선소 등 산업기반 확보와 건조·운용인력 양성 및 유지, 설계·엔지니어링, 핵잠 건조까지 감안하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비용 문제만으로도 논란이 발생할 상황에서 군사적 효과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해진다면, 핵잠의 전력화는 난도가 더욱 높아진다.
핵잠의 진정한 가치는 실전 사용 여부다. 북한 잠수함이 기지 밖으로 나오면 추적하는 작전에 핵잠이 유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평시에 핵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연안으로 가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다.
전시에는 북한 해역 침투가 가능하지만, 이때는 북한 잠수함 중 상당수는 기지에서 모습을 감췄을 가능성이 크다.
핵잠을 앞세워 먼 바다까지 진출, 해상작전을 펼친다는 것도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인도태평양에서 한국 핵잠이 작전을 하는 것은 중국 견제를 추구하는 미국의 해양전략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호주가 핵잠을 보유하게 된 것도 호주 핵잠이 대만해협까지 진출해서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잠수함 위협을 완벽하게 저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초래한다면, 핵잠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핵잠을 앞세워 ‘자주국방’을 강조하기 전에, 핵잠의 전략적 의미를 따져보고 리스크를 줄이는 장기적 관점의 사업 계획 수립과 추진 방안 마련을 먼저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