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잃고도 낙하산 강하… 美 상이용사 ‘인간 승리’

육군 최정예 82공수사단 낙하산병 출신
아프간 전쟁에서 다쳐 두 다리 모두 의족
6월 노르망디 해변 낙하산 강하 때 참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전직 미 육군 공수부대원이 디데이(D-Day) 82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실시되는 낙하산 강하 행사에 참여한다. 디데이란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6월6일 연합국 군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뜻한다. 의족에 의존하는 장애인의 이 위대한 도전을 놓고 ‘인간 승리’란 찬사가 나온다.

미국 전직 공수부대원이자 상이용사인 존 하몬이 지난 3월 텍사스주 코르시카나의 비행장에서 낙하산 강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두 손을 치켜들며 기뻐하고 있다. 2012년 아프간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하몬은 의족에 의존하고 있다. 미 전쟁부 홈페이지

29일(현지시간) 미 전쟁부(옛 국방부)에 따르면 존 하몬(32) 예비역 육군 병장은 미군에서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제82공수사단 출신이다. 2011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한 하몬은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 있는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서 낙하산 강하 등 공수 훈련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2년 하몬은 82사단 4여단 소속으로 아프간 칸다하르주에 배치됐다. 당시 19세의 일병이던 그는 기관총 탄약 운반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루는 동료와 정기적인 순찰을 하는 도중 탈레반 대원이 몰래 설치해놓은 조악한 폭발 장치를 밟고 말았다. 곁에 있던 동료도 똑같이 폭발물에 당했다. 동료는 즉사했고 하몬은 다리를 크게 다쳤다.

 

야전 병원에서의 응급 조치 후 독일로 후송된 하몬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미 오른쪽 다리를 잃은 상태인데 왼쪽 다리마저 무릎 위에서 절단해야 했다. 절망한 하몬을 향해 역시 두 다리를 잃은 어느 부사관이 바지를 걷어 자신의 의족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인생 끝난 게 아니다”라고 격려했다. 고민 끝에 하몬은 군에 계속 남기로 결심했다.

 

82사단 본부는 하몬을 월터리드 국립군사병원 연락병으로 발령했다. 월터리드 병원으로 후송된 82사단 소속 부상병 및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치료와 재활을 돕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약 8년간 복무한 그는 병장 계급으로 군대를 떠나 대학에 입학했다.

 

낙하산 같은 것은 잊고 지내던 하몬은 2025년 가을 과거 82사단에서 함께 복무한 전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재향군인과 그 가족들의 자립을 돕는 어느 비영리단체 후원으로 베테랑 공수부대원들의 낙하산 강하 시범 이벤트가 열리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2026년 6월 노르망디 해변에 착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82사단 장병들이 낙하산을 타고 강하해 독일군과 싸워 연합군의 해안 교두보 점령에 기여한 것을 기리는 이벤트다.

존 하몬의 현역 공수부대원 시절 모습. 2012년 낙하산 강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치켜들고 있다. 미 전쟁부 홈페이지

2012년 이후 낙하산 강하를 한 적이 없는 하몬은 처음에는 주저했다. 하지만 아내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참가를 적극 권유했다. 결국 하몬은 지난 3월 제대 군인과 참전용사 중심으로 구성된 낙하산 강하 훈련 팀에 합류했다. 2차대전 당시 쓰인 C-47 수송기를 타고 상공으로 올라가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하몬은 두 다리 모두 의족에 의존하면서도 최근까지 총 3차례의 낙하산 강하에 성공했다.

 

하몬은 “내가 착지하고 일어났을 때 그냥 울면서 도로 쓰러졌다”며 “무사히 낙하산 강하를 마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후배 장병들을 향해 “전투에 나가서 다칠 수 있다는 점,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란 점 등을 알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오는 6월 프랑스로 가 노르망디 해변에서 낙하산 강하를 할 때 그는 아프간에서 전사한 옛 전우의 목걸이와 군인 신분증 등을 지참할 계획이다. 최근 별세한 할아버지 유골 일부도 품에 안고 뛰어내릴 작정이다. 하몬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용사로 과거 한국에서 겪은 전쟁 이야기를 손자에게 많이 들려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