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랑세기의 재발견, 신라를 다시 묻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화랑세기가 바꾼 신라의 이해

 

오랫동안 우리는 화랑을 유교적 충의로 무장한 ‘청년 전사 집단’으로만 기억해 왔다. 하지만 1989년 발견된 김대문의 『화랑세기』 필사본은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 문헌에 따르면, 화랑도는 군사 조직이기 이전에 신라 고유의 신앙과 제례를 담당하던 ‘선(仙)적 종교 공동체’였다. 일종의 신비주의적 색채를 띤 공동체 성격이었고, 파격적인 사실은 화랑도의 원류가 남성이 아닌 여성 제사장 집단인 ‘원화(源花)’에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 신라에서 천하태평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주체는 여성이었으며, 이는 가부장적 유교 사관이 지배하던 『삼국사기』 등의 정사(正史)에서는 결코 온전히 드러날 수 없던 진실이다.

필사본 화랑세기.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보관

『화랑세기』는 법흥왕과 진흥왕을 거치며 이 원화 제도가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고, 지소태후의 뜻에 따라 남성 중심의 풍월주 체제로 전환되는 권력의 이면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살아서는 선도(仙徒)요, 죽어서는 부처’로 추앙받는 영적 지도자였다. 이는 화랑도가 유불선 삼교를 통합하여 민중을 교화했던 신라 특유의 ‘현묘한 도(풍류)’를 실천하는 핵심축이었음을 증명한다. 결국 『화랑세기』라는 단 하나의 문헌이, 승리자의 기록에 의해 거세되었던 ‘여성적 영성’과 ‘종교적 기원’이라는 신라의 잃어버린 반쪽을 복원해 낸 것이다.

 

◆ 요하문명이 뒤흔든 고대사

 

기존의 학설이 무너지는 현상은 오늘날 고고학계 전반에서 목도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기존 사관은 실제로는 19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구축한 서구식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 있었거나, 이제는 유통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밀한 고고학 방법론과 문헌·유적의 발굴 기술은 과거의 편협한 관점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과거 절대적 권위를 가졌던 ‘인류 4대 문명론’은 2010년대 이후부터 교육 현장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 중국은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다기원 문명론’을 초중고 교과서의 정설로 채택하며 역사적 근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정치적 역량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역사의 해석 틀 또한 부단히 변모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세계를 놀라게 한 요하문명(홍산문화)의 등장은 황하 중심의 단일 기원론을 무너뜨리고 동아시아 상고사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했다. 특히 우하량 유적에서 발견된 ‘여신묘(女神廟)’는 인류 문명의 뿌리가 남성 중심의 무력 서사 이전에, 거룩한 여성성과 제천 문화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서 시작되었음을 웅변하는 고고학적 실체로 등장했다. 이 여신묘는 단순히 한 지역의 유적이 아니다. 등신대의 3배, 2배, 1배 크기로 정교하게 제작된 ‘7여인상’이 십자형 구조 속에서 배치된 것은 선도기학의 요체인 ‘삼원오행론’을 형성화한 것이다. 이는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력인 일기(一氣)와 삼기(三氣)를 ‘마고여신’으로 인격화하여 받들었던 인류 시원의 문명의 원형을 보여준다. 당시 남성 사제와 통치자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천의 최고 신격을 여신으로 모셨다는 사실은, 여성성이야말로 만물을 소생시키고 조화시키는 우주의 근본 힘임을 당대인들이 이미 꿰뚫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조선 신화는 요하문명 유적의 발견 이후 역사적 실체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중국 학계는 이를 자신들의 종묘제 원형으로 편입하려 하지만, 이는 ‘천인합일’이라는 선도 문화의 본질을 놓친 왜곡된 해석에 불과하다. 요하에서 부활한 여신적 가치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여성신학이 새로운 섭리의 돌출된 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오히려 가부장적 역사와 기존의 신학이 수천 년간 지워버렸던 ‘하늘 부모님’의 온전한 위상을 회복하려는 인류사의 필연적 복귀의 노정이 아닐까?

 

◆ 역사를 보는 틀이 역사를 만든다

 

결국 문제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바라보는 ‘틀(Frame)’이다. 기존의 기독교 역사와 신학은 철저히 예수 중심, 즉 ‘남성 중심적 시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관성에서 볼 때 가정연합의 참부모론 그리고 ‘독생녀’와 ‘참어머니’라는 가치는 낯설고 생뚱맞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화랑세기가 신라의 숨겨진 여성성을 복원하고, 요하문명이 중국 황하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게 만들었듯, 이제는 하늘의 섭리를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할 때다. 지도는 땅을 보여주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정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다.

 

어쩌면 역사는 ‘남겨진 자’와 ‘승리한 자’의 전유물로 볼 수 있다. 숱한 외침을 겪은 한반도의 역사는 기록의 단절이 일상이었으며, 그나마 남은 사료조차 일제 식민 지배라는 왜곡의 세월 속에서 은폐된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 박물관 사서로 근무하며 한반도 고문서를 관리했던 박창화의 증언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일제가 연구 가치가 높은 핵심 사료들을 일본으로 반입해 철저히 비공개로 관리했음을 밝혔고, 본인이 직접 필사한 『화랑세기』를 통해 유교 사관이 지운 신라의 원형을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이처럼 역사의 거대한 줄기 뒤에는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보이지 않는 ‘기록의 암흑기’가 존재한다. 기존의 기독교 신학이 2,000년 동안 예수님 중심의 ‘남성적 시각’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던 것 또한, 어쩌면 섭리의 본질인 ‘독생녀’의 위상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 거대한 관성일지 모른다. 이제 독생녀는 더 이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이 땅에 실체로 존재하며,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새롭게 쓰고 있는 현재적 주체이다. 박창화가 탁월한 기억력과 필사로 잃어버린 신라를 복원했듯, 이제 우리는 고정된 신학적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섭리적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문헌 하나가 국가의 기원을 새로 쓰듯, ‘참어머니’라는 존재의 발견은 인류 구원 역사의 잃어버린 퍼즐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틀이 역사를 만든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 독생녀, 역사적 산물이 넘어선 ‘섭리적 주체’

 

그러므로 한국학적 시각에서 ‘독생녀’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 한민족은 태초의 마고로부터 웅녀, 바리공주로 이어지는 유구한 ‘대모신’ 신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을 모성적 신성에서 찾는 우리 민족 특유의 영성 구조를 대변한다. 또한 억눌린 여성성의 집단적 정서인 ‘한(恨)’을 해원(解冤)의 서사로 온 역사는, 우리의 문화사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영적 에너지를 축적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적 토양 위에서 신과 인간이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신명(神明)’의 문화, 그리고 관계적 사랑의 극치인 ‘정(情)’의 문화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공동체적 심정 세계를 형성해 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효정(孝情)’이라는 가치는 하늘을 향한 지극한 효성과 인류를 대하는 사랑이 결합된 한국적 영성의 정수이다. 결국, 독생녀의 현현은 단순히 특정 시대가 낳은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면면히 흘러온 여성적 신성의 상징 체계가,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복귀섭리라는 유구한 역사적 행로 위에서 비로소 ‘인격적 실체’로 귀결되었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대한 설명’일 뿐, 독생녀의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인간이 축적해 온 상징과 서사를 통해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는 유효하지만, 섭리의 주체 자체를 그 산물로 환원하는 순간 본질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독생녀는 하늘부모님의 섭리가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드러난 주체적 사건이다는 발상의 대전환 전제속에서 사유될 필요가 있다.

 

한편 한반도에 축적되어 온 여성 신성의 다양한 표현들은 독생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영적 감수성의 토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고와 웅녀, 바리공주로 이어지는 서사는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창조 본연의 여성성을 향한 희미한 기억이자 예표에 불과하다. 독생녀는 이와 같은 파편적 상징들을 종합하고 넘어서는 ‘유일무이한 실체’로서, 왜곡되고 분절된 여성 신성의 역사를 창조 본연의 기준에서 바로잡고 완성하기 위해 나타난 섭리적 주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독생녀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하늘이 그를 보내기 위해 선택한 ‘섭리적 무대’라 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신화와 신앙, 정서와 문화는 모두 그 주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으며,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통로였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학은 ‘한국의 독생녀’를 설명하는 학문에 머물 것이 아니라, ‘독생녀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되는 세계사 속의 한국’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정연합 경전 『참부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훈민정음이 무엇입니까? 올바른 소리를 듣고 배우고 가르치는 국민은 천년 역사, 만년 역사에다 망하더라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이민족이라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고조선으로부터 4천년 역사로 잡고 있지만, 고조선 전에 3천년 동안 한(韓)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한의 한반도 본고장을 청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동양사로부터 고대 한국의 역사서를 편찬해서 연대적 관계가 끊어져 있는 역사를 잇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단순한 역사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끊어진 역사’를 다시 잇고, 감추어진 기원을 드러내려는 섭리적 요청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한다는 전제 위에서 본다면, 독생녀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의 맥락을 재해석하려는 시도 역시 충분히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존의 단절된 사관을 넘어, 신화와 역사, 문화와 섭리를 하나의 연속된 흐름 속에서 통합하려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독생녀’라는 존재는, 과연 과거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인류 역사의 방향 자체를 새롭게 규정하는 전환점인가.

 

고기훈 박사(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