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고가, 설계도면과 다르게 절단”

전문가 ‘안전계획서’ 살펴보니

28m 한번에 자르도록 명시
21m 先절단… 붕괴위험 키워
크레인 고정 작업도 안 지켜
警, 휴일도 출근… 압수물 분석
사고 전 단차 미보고 등 규명

서울 서소문 고가 철거 당시 현장에서 설계도면과 다른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공사 설계·시공 단계에서 안전관리계획이 적정하게 수립됐는지 여부와 실제 철거가 이 계획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있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입수한 국토안전관리원의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공사 안전관리계획서에 따르면 사고가 난 서소문고가 S9 구간은 총 28m로 전체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설계 도면상 이 구간을 절단할 때는 구멍을 뚫고 줄톱을 넣어서 슬래브(판)를 한꺼번에 절단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1m를 먼저 절단하는 등 도면과 다른 시공이 이뤄지며 붕괴 가능성을 키운 것으로 의심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현장에서 긴급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설계도면에는 거더(건설 구조물을 받치는 보)를 절단할 때 크레인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절단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그러나 사고 당시 현장에는 크레인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절단 방식에 대해서도 “도면상으로는 28m 전체를 한 번에 절단해 내려야 하는 구조”라며 “‘21m를 먼저 자르고 7m를 남긴다’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안전관리계획서에 대해서도 “국토안전관리원이 가설 지지대 설치 등 보강 계획을 수립하라고 했지만, 관련 내용도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사고 당시 구조물 붕괴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임춘근 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지난 27일 서소문고가 붕괴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철거 계획을 수립할 당시 설계 내용상 거더의 안전성과 관련해서는 크게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장에서 거더 자체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으리라고는 당시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붕괴 전후 공사 관계자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서소문고가 사고 전담수사팀은 휴일인 31일에도 출근해 시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시공사 등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했다. 수사팀은 안전관리계획서와 구조설계도, 작업 지시 내역 등을 바탕으로 공사의 설계나 시공 단계에서 안전관리 계획이 제대로 수립됐는지, 이 계획에 따라 철거가 진행됐는지 등을 파악 중이다.

 

경찰은 사건 전후 현장 인력들과 시공사, 서울시, 국토부 등 관련기관 사이에서 어떤 식의 소통이 이뤄졌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특히 12시간 전 단차가 발생하는 중 붕괴 조짐이 보였을 당시 누가 어떤 의사결정을 해 현장을 방치하고 사고로 이어지게끔 했는지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행정·제도적 개선점을 찾기 위한 ‘재난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재난 원인 조사는 재난이나 사고 원인과 대응 과정에 대한 조사 및 평가를 뜻하는데, 그중 예비 조사는 상황 파악, 본조사 필요성 판단 등을 위한 초기 단계의 조사다. 행안부는 6월말까지 예비 조사를 마무리해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본조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기둥만 남은 서소문 고가… 열차 정상운행 서울 중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엿새째인 31일 경의선 등 열차들이 잔해 해체·복구 작업이 끝난 사고 현장을 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첫차부터 KTX 서울∼행신역 구간 등 고속열차와 경의선 신촌∼서울역 구간 등 일반열차가 평소 수준의 운행률로 정상운행했다고 밝혔다. 최상수 기자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사고로 운행이 중지됐던 경의선 신촌∼서울역 구간은 31일 정상화됐다. 국토교통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경의선 신촌~서울역 선로 구간과 운행 열차의 안전성을 모니터링하고 있어 일부 구간에서 서행할 수 있지만 전 구간 모두 운행 중”이라며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고가도로 83개 가운데 서소문고가가 유일한 D등급 시설이었다. 시설물 안전관리 등급상 A등급은 ‘우수’, B등급은 ‘양호’, C등급은 ‘보통’ 수준의 상태를, D등급 이하는 사용 제한이나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한 상태로 분류된다. C등급은 모래내고가, 도림천고가, 남산육교, 소월고가, 수색교, 한강로다리, 현저고가, 염천교고가, 삼각지고가, 도림고가, 화랑고가, 욱천고가 등 12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