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자 마을이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낮 동안 고요하던 돌담길에는 전구 불빛이 하나둘 켜졌고, 논에는 저녁 하늘이 잔잔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거대한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500년 세월을 품은 충남 아산 외암마을이 초여름 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깨어났다.
아산시가 '아산 방문의 해'를 맞아 마련한 '2026 외암마을 야행'이 지난 29일 개막해 31일까지 사흘간 외암마을 일원을 달빛으로 물들였다.
올해 야행의 상징은 단연 높이 10m 규모의 초대형 달빛 조형물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달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달 앞으로 모여들었다. 부모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달을 올려다봤고, 연인들은 달빛 아래 사진을 남겼다. 달을 배경으로 선 사람들의 검은 실루엣은 한 폭의 그림처럼 밤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마을 전체도 거대한 야외 전시장으로 변했다.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고택과 돌담길은 은은한 조명으로 단장했고, 논길을 따라 이어진 불빛은 방문객들을 조선시대 밤 산책길로 안내했다. 논에 비친 조명과 별빛은 거울처럼 흔들리며 초여름 정취를 더했다.
특히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마치 영화 속 장면 같다"는 감탄이 이어졌다.
축제는 단순히 보는 행사에 머물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는 워터스크린 쇼 '외암사계'와 미디어아트가 펼쳐졌고, 해설사와 함께 걷는 '외암 달빛 마실', 국가유산을 찾아다니는 '외암마을 탐험대', '진짜 이간 선생을 찾아라' 등 참여형 프로그램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상류층 고택 안채에서는 전통혼례 재현 행사 '예안이씨 혼례날'이 열렸고, 풍물패의 길놀이와 참봉댁 가마솥 밥짓기 체험, 외암주막 먹거리 장터에서는 조선시대 야시장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이번 야행의 매력은 화려한 공연보다도 '외암마을 그 자체'에 있었다.
낮에는 역사마을이지만 밤이 되자 달빛과 조명이 더해진 거대한 무대가 됐고, 방문객들은 배우가 아닌 여행자가 되어 조선의 밤을 걸었다.
아산시 양태진 문화유산과장은 "외암마을이 지닌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의 가치를 현대적 콘텐츠와 결합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야간 문화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외암마을만이 가진 특별한 밤의 매력을 더욱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