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민 코트라 일본지역본부장 “日 진출엔 ‘신뢰 기반’ 가장 중요… AI·반도체 등 협력 기회 많아” [세계초대석]

신기술 실제 구현한 실증 중시
현지 유통업체와 협업은 필수
비용 들더라도 ‘안전하게’ 선택

단기 아닌 장기적 시장 접근을
日도 특정 부문 한국 선두 인정
AI·자율주행 등 韓에 진출 기회

日서 먼저 한국 기업 협력 타진
저출생·고령화 양국 공통 과제
돌봄·의료 IT접목 진출 해볼만
“일본에 진출하려면 ‘신뢰 기반’이 가장 중요합니다. 혁신과 속도를 중시하는 미국, 규모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중국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죠.”

 

박용민 코트라 일본지역본부장이 지난 5월 28일 도쿄 코트라 사무실에서 일본 시장의 특성과 한·일 경제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용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일본지역본부장은 “일본은 사전 검증과 장기 거래 관계를 중시한다. 아이디어나 신기술을 실제로 구현한 실증(PoC) 사례나 현지 유통업체 등과의 협업 없이 들어가려다간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트라의 미국(실리콘밸리), 중국(칭다오), 일본(도쿄) 3개국 무역관장을 모두 지낸 경험을 토대로 그가 일본 시장에 대해 내놓은 진단이다.

미·중 전략경쟁과 공급망 재편 속에 최근 한국 기업을 보는 일본의 시선은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한류 효과를 넘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현실적 필요로 보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게 박 본부장의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개월간 네 차례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한·일 관계는 협력 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박 본부장은 “한국 기업들이 일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며 AI, 반도체, 배터리, 수소, GX(친환경전환)를 향후 양국 협력 가능성이 큰 5대 분야로 꼽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구 1억7000만명 규모의 한·일 ‘공동시장’, 양국이 제3국에서 공급망을 공유하는 ‘공동진출’ 가능성을 모색하는 그를 지난달 28일 도쿄 지요다구 코트라 도쿄무역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중·일 현장을 두루 경험했는데, 차이점은.

“일본은 ‘이 정도 규모로도 해 봤는지’, ‘문제는 없었는지’를 강하게 따진다. 그래서 작은 실증이라도 성실히 수행하는 쪽이 성공한다. ‘세계 어딘가에서 혁신이 일어난다면 실리콘밸리일 것’이라고 말할 만큼 혁신과 속도를 강조하는 미국과 다른 점이다. ‘규모와 가격으로 승부하면 뭐가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는 중국과도 다르다. 또 일본은 선진국으로서 이미 수십 년간 탄탄히 다진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기술이나 상품이 있다면, 일본 소재·유통 업체와 협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현지 파트너가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본선인도조건(FOB)으로 보내줄 테니 알아서 파세요’ 같은 접근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반품, 유지, 보수 등 문제가 생기면 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 질문이 반드시 나온다. 결국 현지 법인을 만들어 직접 대응하거나 현지 파트너사를 찾게 된다. 일본에선 로프트 같은 큰 유통체인도 거래 상담을 할 때 중간유통업자 서너 명과 같이 나온다. 로프트는 필요로 하는 제품에 관한 큰 틀만 제시하고 구체적 상담은 중간유통업자들이 맡는다. 직거래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그들도 알지만, 값이 다소 비싸지더라도 사고와 리스크를 줄이는 체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또 어떤 시행착오를 겪나.

“가까운 이웃 나라이고 외모나 문화도 비슷하다 보니 쉽게 통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현장 담당자의 권한이 큰 편인 한국, 미국과 달리 일본에선 윗선으로 보고가 차곡차곡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 추진이나 제품·부품 교체가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신 동종업계의 사용 경험과 소개는 실증 역할을 한다. ‘누가 써봤는데 문제가 없다더라’는 신뢰가 있으면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다. 또 일본은 단기 매출 시장이 아니라 장기 신뢰 시장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어느 해외 시장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규격·스타일·취향에 맞게 현지화하는 과정에 충분히 공을 들여야 한다.”

―요즘은 주로 어떤 분야 기업들이 진출하나.

“과거에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중간재 중심이었다. 지금 도쿄무역관이 지원하는 업체는 소비재와 중간재가 거의 50대 50으로 나뉜다. 소비재 중에서는 화장품이 독보적이고, 패션과 의약품 진출도 활발하다. 올해 1분기 증가세는 의약품이 두드러진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나.

“최근 피부 재생 분야 기업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다. 한국식 화장법과 피부·미용 시술에 대한 일본 여성들 관심이 많은데, 화장품뿐 아니라 의료기기 수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보고 있다. 이밖에 한국이 개발한 치료 성분·원료를 일본 대형 제약사가 받아서 생산·유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소비자에게 낯선 브랜드인 경우 현지의 신뢰 받는 제조·공급망과 만나면 더 빨리 진입할 수 있다. 그게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한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한류로 인한 이미지 개선 효과가 분명히 있다. 내가 처음 도쿄무역관에서 근무했던 25년 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일본이 더는 한국을 낮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엔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면 좀 더 싼 한국산을 쓰겠다’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특정 부문에서는 한국이 앞선다는 것을 일본이 인정한다.”

―어떤 분야에서 앞서나.

“AI, 반도체, 자율주행 등이다. 요즘 일본의 모빌리티 산업 전시회에 한국의 자율주행 관련 업체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양국 차의 자율주행 기능을 체험해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이 약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와 코트라는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한·일 비즈니스 플라자’를 개최하며 AI·반도체·모빌리티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종합 품목에 대한 수출상담회로 진행하던 과거 방식에서 변화를 준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참가 기업들이 자기 기술과 서비스를 알리는 스타트업피칭, 한국 반도체 스타트업 4강 업체들의 기술설명회도 함께 열렸다. 박 본부장은 “단순히 부스를 내고 일본 측과 상담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협력 기회를 창출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우리 AI 기술 등에 일본 쪽도 관심을 보이나.

“AI는 우리가 설계, 모델링에서 굉장히 발전돼 있다. IT(정보기술) 분야의 경우 일본은 아직 사용자 요구대로 만들어주는 SI(시스템통합) 시장에 머물러 있는 반면, 우리 기업들은 먼저 문제를 인식해 해법을 제시한다는 스타트업 본연의 강점이 있다. 반도체 역시 일본은 소부장이 강했지만 제조 기반은 약하다. 일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한국 기업에 대한 현지 관심이 크다.”

―한·일 관계가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

“양호한 관계를 적극적인 경제 협력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일본에서도 많이 한다. 얼마 전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고위 인사가 ‘한국 기업과 협력하지 않으면 일본이 이 지역 경제블록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25년 전만 해도 ‘아시아 1등’이 아닌 ‘세계 2등’이라고 자부하던 나라가 먼저 그런 언급을 하니 좀 놀랐다. 과거 일본에 ‘물건 좀 사 달라’고 하던 한국에 ‘미들 파워’(중견국) 협력을 먼저 제안하는 모습 등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정·재계에서는 한·일 경제 공동체 구상도 나온다.

“일본 인구는 한국의 2.5배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한·일을 같은 시장으로 보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공동시장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시장이 커지면 생산 비용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또 양국은 저출생·고령화 등 공통 과제도 많다. 이에 대처하는 제품, 서비스를 한·일 시장을 함께 바라보면서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도 가능할 것 같다. 요즘 도쿄무역관에서는 제3국 공동진출도 강조한다. 양국에 해외 생산 거점이 많은데, 공급망을 공유해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 있는 한국 공장에 한국 업체뿐 아니라 일본 업체도 바로 납품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비용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반대 경우도 유효하다. 일본 기업들도 이를 원한다.”

―양국 협력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는.

“AI, 반도체, 배터리, 수소, GX 다섯 가지다. 우리의 전략 산업이면서 다카이치 내각이 선정한 17개 전략 분야와도 겹친다. 한·일이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부분이 많아 상호 보완·협력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일본의 고물가, 인력난은 한국 기업에 어떤 의미인가.

“고물가 시대일수록 저렴하고 혁신적인 서비스 수요가 커진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에 기회다. 인력난이 심한 고령자 돌봄·의료 분야에서는 IT를 접목한 혁신적 DX(디지털전환) 제품 진출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원격 진료·원격 약 배달 등을 현지에서 실증 중이다. 양국이 공통 사회문제를 겪는 만큼 공감대를 넓히고, 서비스를 교류하고, 같이 상품 개발도 할 수 있다. 한·일 협력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박용민 코트라 일본지역본부장은…

 

●1970년 경남 김해 출생 ●김해고 졸업 ●부산대학교 무역학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투자경영학 석사 ●코트라 일본 도쿄·캐나다 토론토 무역관 근무 ●코트라 기획혁신팀장·고객가치실장·디지털플랫폼운영센터장 ●코트라 중국 칭다오·미국 실리콘밸리 무역관장 ●제28대 코트라 일본지역본부장 겸 도쿄무역관장(202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