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와 진리도, 삶과 죽음도, 나와 너도… ‘결국은 하나’ 통찰을 담다

이종구 작가 개인전 ‘사유’

반가사유상·진돗개 한곳에 나란히 둬
조주 선사 ‘無字 화두’ 이야기 담아내
두 개의 캔버스를 하나로 붙이기도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불교 ‘不二 사상’ 회화로 구현하려 해”
20일까지 삼청동 학고재서 38점 선봬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오른쪽 다리 위에, 오른손은 갸름한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부처의 모습. 화려한 보관을 쓴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과, 소박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띤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학고재 전시장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종구 화가.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어느 날, 화가 이종구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났다. 여러 박물관을 드나들며 오랫동안 반가사유상을 봐 왔지만, 그날 중앙박물관에서 마주한 반가사유상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어떤 깊은 고요 속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존재의 태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자신의 바뀐 상황 때문에 오는 깨달음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이미 한 해 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단절과 폐쇄의 감각을 절감한 그는 지리산 둘레길을 자주 찾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뒤 개인적인 질병과 수술을 겪으며 죽음을 대면하기도 했고, 이어진 정년퇴임이라는 삶의 전환점까지 맞닥뜨려야 했다.



세상의 폭풍우와 인생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던 그때, 그는 침묵 속에서 자연과 전통 사찰을 천천히 걸으며 온몸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이 같은 침묵과 사유의 경험은 민중미술을 통해 사회 비판을 계속해 온 그에게 인간 존재와 생명의 문제를 새롭게 응시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근원적이고 존재론적 방향 선회였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내면의 성찰로….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 수행승이 중국 당나라의 고승 조주 선사를 찾아와 이같이 물었다고, ‘무문관’은 적고 있다. 그런데 조주 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없다(無).”

대승불교는 개를 포함해 모든 중생에게도 불성(부처의 성품)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조주 선사는 왜 “없다”고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놨던 것일까. 이것이 바로 조주 선사의 ‘무(無)자 화두’다. ‘있다’ ‘없다’의 이분법적 분별심과 고정관념을 단번에 끊어버리기 위한 선문답으로, 이후 수많은 수행자는 이 무자 화두를 마음에 품고 진리의 자리를 참구해 왔다.

조주 선사의 이 무자 화두를, 그도 어느 날 만났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지난날의 고뇌, 대립, 갈등, 병고, 치유, 성찰 등 진리를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이에 조응하는 반가사유상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 곧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날 인생의 회고, 성찰, 번뇌, 대립, 갈등, 병고, 치유 등 나의 내력과 진리를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으면서, 이에 조응하는 반가사유상을 다른 화면에 작업하여 하나로 연결했지요. 두 개의 화면은 둘이 아닌 하나, 곧 불이(不二)의 세계였습니다.”

 

‘사유_無’,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91×65㎝. 학고재 제공

팬데믹을 기점으로 외부 현실로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세우고 세속의 모습과 반가사유상을 다양하게 조응시킨 이종구 작가의 개인전 ‘사유(Pensive): 思惟’가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다. 2021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반가사유상 18점을 비롯해 38점의 회화 작품을 통해 사회적 리얼리즘에서 존재와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적 리얼리즘’ ‘내면적 리얼리즘’으로 선회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는 6월20일까지.

전시장 안쪽에는 반가사유상과 진돗개를 병치 공존시켜 조주 선사의 무자 화두 이야기를 담은 작품 ‘사유_無’를 비롯해 반가사유상 18점과 인간의 몸이나 불과 촛불, 연꽃, 진돗개, 은행나무까지 다양한 존재들이 검은 화면 안에 마주 앉아 있다. 두 개의 캔버스를 하나로 붙인 작업도 적지 않다.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닙니다. 일부러 캔버스 두 개를 하나로 붙인 것도,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불교의 ‘불이 사상’을 회화로 구현하려는 것이죠.”

모든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불교의 불이 사상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셈이다. 이는 번뇌와 진리, 고통과 평화, 삶과 죽음,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불교 미술은 아니다. 포교를 위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가 작품 안으로 끌고 온 반가사유상은 법당의 신앙 대상이 아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마주한 미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유_무무명’ 등 반가사유상 옆에 있는 인간의 몸들은 누드 형상이지만, 관능이나 에로스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반가사유상과 불이를 이룬 이들 몸들은 사랑과 젊음의 육체가 아닌 시간과 병, 노동과 늙음이 다양하게 새겨진 인간 존재 자체였다.

불꽃이나 연꽃 등도 상징적이다. 인간의 앞뒤를 가득 메운 화염은 번뇌이지만, 부처의 뒤에 자리한 불꽃은 광배(光背)다. 속세 인간의 번뇌 불꽃은 무명을 밝히고 나면 지혜의 빛으로 변환된다. 연꽃 역시 한 깨달음을 상징한다. 세속의 번뇌와 깨달음의 서광이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인 세계라 하겠다.

반가사유상이 담기지 않는 작품들도 예사롭지 않다. 마치 그림 작업도 노동이라는 듯, 사진 같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림들이다. 작가의 자화상인 ‘사유_생로병사2’의 한쪽에는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작가가 환자복을 입고 오른손으론 수액 거치대를 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말쑥한 정장을 한 작가가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 작가는 “환자일 때 살기 위해 링거를 잡고 있는 것처럼, 퇴원하니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잡고 있게 되더라”라며 “이게 삶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무 연작들은 부여 내면산 은행나무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등 1000년이 넘은 고목들을 그린 작업이다. 거대한 나무 아래 아이와 중년, 휠체어에 몸을 맡긴 노인의 모습을 넣어 인류 보편의 생로병사를 한 폭의 풍경화로 펼쳐낸다.

충남 서산에서 농민의 아들로 나고 자란 이종구는 1980년대부터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서 농촌 현실과 민중의 삶을 집요하게 그려온 작가다. 특히 정부미 쌀포대 위에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 가려진 농민의 얼굴을 그려 넣은 작업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산업화의 그늘을 시각화한 기념비적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업 초기 농민을 중심으로 시대적 모순을 고발하는 작업을 해 온 이종구의 시선은 이제 생명의 본질을 향한 질문으로 향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으면, 광장의 촛불이 아닌 인간 내면의 어둠을 비추는 작은 불빛 앞에 앉은 반가사유상이 오늘도 침묵 속에 오래된 미소로 물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목도하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느냐고.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고통과 평화는 과연 무엇이고, 그래서 둘이냐고, 하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