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칼럼] 정권은 짧고 재정은 길다

가열되는 ‘삼전닉스’ 성과급 논쟁
‘반도체 = 공공재’ 인식 혼란 키워
기업에 대한 정치 개입 위험 자초
국가 세수 미래 위한 종잣돈 돼야

‘삼전닉스(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억’ 소리 나는 성과급 논쟁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반도체 계급’ ‘실리콘칼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대출 규제를 비웃듯 두둑한 현금으로 부동산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로또라도 맞지 않은 대다수 월급쟁이로서는 상대적 박탈감마저 사치다. 두 회사가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주식 초보까지 텐배거(10배 이상 수익률)를 꿈꾸며 뛰어들고 있다.

증권가 예측대로라면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각각 300조원, 250조원에 달한다. 법인세만 해도 지난해 85조원에서 올해는 120조원을 넘을지도 모른다. 올해 국가 전체의 법인세 목표치가 두 기업만으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성과급에 따른 소득세와 증권거래세까지 더하면 정부 곳간은 더 풍족해진다. 삼성전자가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자사주의 3분의 1만 곧바로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을 고려해도 두 회사에서 현금으로 풀릴 돈은 35조원에 달한다. 8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의 4~5% 수준이자 올해 정부 전체의 연구개발(R&D) 예산 35조5000억원과 맞먹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다.

김기동 수석논설위원

두 회사가 버는 돈을 놓고 말들이 많다. 초과이윤인지, 초과 세수인지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다. 정부가 혼란을 키우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하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그라들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반도체는 공공재”라며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재분배할 방법을 찾자”고 했다. 정책은 상생을 말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윤 배분 개입’을 비판한다.



물론 반도체가 세제와 전력망, 국가 인프라 지원 속에서 성장한 것 자체를 부인하긴 힘들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건 국가의 책무다. 이런 논리면 기간산업은 모두 공공재다. 기업은 이미 세금 납부와 일자리 창출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초과이익 재분배 자체가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업에 대한 정치의 개입은 심각한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15년 전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을 곱씹어봐야 한다.

기업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성과급 기준이 불투명하거나 특정 사업부 쏠림은 ‘노노 갈등’과 대·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양극화를 키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가 결국 경제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교육 의욕, 노동 의욕이 떨어져 인적 자본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소모적 힘겨루기가 아닌 사회적 지혜를 모을 때다.

경제는 대통령이나 정책실장, 장관 등 정책 책임자의 말에 요동친다. 기업의 투자심리나 의사결정과 직결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당장은 넉넉해진 정부 곳간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지난달 12일 이 대통령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포퓰리즘적 긴축재정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 채무를 명분으로 들고 있는데 사실상 민생 고통을 수수방관하라는 무책임한 목소리”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지급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분석결과를 제시하며 확장재정 기조를 분명히 했다.

맞는 말이자 틀린 말이다. 재정은 국가 철학의 문제다. 초과 세수가 발생할 경우 지방교부세 정산, 공적자금 상환, 국가부채 상환 등에 먼저 사용하도록 한 국가재정법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물론 안 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소비에도 미덕이 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원칙 없이 소진한 2021~2022년의 과거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재정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비대해질수록 민간은 위축된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기업은 50년,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 재정은 일회성 소모품이 아닌 미래 세대를 잇는 종잣돈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