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동
빠르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와이프의 본가는 자양동이다. 결혼 전 연애하는 동안 매일 집에 데려다주던 동네인 자양동은 제2의 고향과도 같다. 자양시장 앞 번화가에서 늦게까지 먹고 마시던 식당들, 강변이 가까워 어느 계절이든 불어오던 물 냄새 나는 바람들, 출퇴근용 오토바이를 처음 샀을 때 함께 드라이브했던 한강공원 가는 길. 자양동에는 정말 많은 추억이 있다.
◆안채식당
목욕탕 앞에는 자주 가는 식당이 있다. 선선해지는 계절이면 문을 활짝 열어놓는 곳, 자양동의 안채식당이다. 이곳은 동네 골목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정감 가는 식당이다. 이런 식당은 낮에는 점심 손님들을 받고, 식사시간이 지나면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저녁 영업시간에 맞춰 오랜만에 안채식당을 찾았다. 해가 길어지는 계절,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게에 들어서니 초여름 바람이 입구에서부터 맞아주는 기분이다. 안채의 메뉴는 다양하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찌개류부터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안주 메뉴들도 있다. 정식 메뉴들은 혼자 먹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보쌈 정식을 주문하고 열린 문밖을 내다보았다. 하교 시간에 맞춰 지나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옆 가게에서 들리는 잔잔한 음악 소리까지. 이른 저녁식사가 기대되는 시간이다. 곧 음식이 차려졌다. 가지런한 반찬들과 마치 방금 밭에서 따온 것 같은 상추들,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도톰하게 썰어낸 보쌈, 허투루 끓이지 않은 듯한 된장국, 직접 담근 김치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한 상이다. 손수 만든 반찬들이 가지는 매력은 분명하다. 기성품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어딘가 투박한 그 맛은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 맛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상추 위에 뜨끈한 보쌈과 밥, 마늘과 쌈장을 올리고 한입 가득 쌈을 넣어 충분히 음미해 본다. 흔한 재료들인데도 유독 익숙한 맛이 올라온다. 우리 어머니는 쌈장을 사본 적이 없다.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에 소주를 섞어 늘 즉석 쌈장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곳 안채의 쌈장도 그런 맛이다. 달지 않으면서도 입에 딱 맞는 그 맛이 보쌈과 찰떡궁합이다. 어머니들은 늘 이런 맛을 낸다.
1만2000원 정식에 보쌈의 양도 꽤 된다. 절반 정도만 먹어도 배가 불러온다. 그러면서도 건더기가 가득한 시래기 된장국도 상당히 준수한데, 참 남길 수가 없는 맛이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안채식당에서의 식사는 늘 떠날 때마다 다음에는 무엇을 먹어볼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보쌈의 추억
예전부터 장터와 잔칫상 등 우리의 삶 속에는 늘 돼지고기가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보쌈은 가장 한국적인 돼지고기 문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삶아낸 삼겹살을 김치와 함께 싸 먹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음식 같지만 그 안에는 오랜 역사와 공동체라는 우리의 정서가 담겨 있다.
보쌈의 어원은 ‘싸다’라는 의미의 ‘보(褓)’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오랜 문화 속에서는 김장하는 날 갓 담근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를 싸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보쌈 문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겨울을 준비하던 김장날은 단순한 노동의 날이 아니라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는 축제였다.
특히 돼지삼겹살은 지방과 살코기의 균형이 좋아 보쌈용으로 사랑받아 왔다. 오랜 시간 삶아내면 기름은 부드럽게 녹아들고, 살코기는 촉촉한 결을 유지한다. 여기에 된장, 마늘, 대파, 통후추 등을 넣어 삶으면 돼지고기의 잡내는 사라지고 은은한 감칠맛이 남는다. 지역에 따라 커피, 된장, 막걸리, 한약재 등을 넣는 방식도 발전해 왔다.
보쌈의 매력은 단순히 고기에 있지 않다. 잘 익은 김치와의 조화가 핵심이다. 특히 굴이나 무채를 넣은 보쌈김치는 삼겹살의 기름진 풍미를 정리해 주며 입안에서 완벽한 균형을 만든다. 여기에 새우젓 한 점을 곁들이면 짠맛과 감칠맛이 더해져 맛의 깊이가 완성된다. 부드럽게 삶아낸 돼지고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한 상으로 표현된다. 보쌈은 단순한 돼지고기 요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계절, 노동, 나눔, 술자리와 추억이 함께 삶아진 음식이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삼겹살 한 점 속에는 오래된 한국의 시간이 담겨 있다.
■동파육 덮밥 만들기
<재료> 돼지 통삼겹살 600g, 대파 1대, 생강 20g, 마늘 5알, 간장 120ml, 진간장 50ml, 설탕 40g, 황설탕 30g, 청주 100ml, 물 500ml, 팔각 2개, 계피 1조각, 건고추 1개, 식용유 약간, 계란 1개, 밥 1그릇
<만드는 법> ① 돼지삼겹살은 큼직하게 썰어 팬에 겉면을 노릇하게 구워 기름을 살짝 빼준다.②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대파, 생강, 마늘을 볶아 향을 낸 후 간장, 진간장, 설탕, 황설탕, 청주, 물을 넣고 끓여 준다.③팔각과 계피, 건고추를 넣고 구운 삼겹살을 넣어 약불에서 1시간30분~2시간 정도 천천히 졸여준다. 중간중간 국물을 끼얹어가며 윤기를 입혀 준다.④고기가 충분히 부드러워지면 국물을 자작하게 졸여 농도를 맞춘다. 먹기 좋게 썬 동파육을 밥 위에 올리고 졸여진 소스를 끼얹어 준 후 계란 프라이를 올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 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