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로 찍힌 헝가리 대통령… 새 총리 “사퇴 안 하면 해임”

오르반 정권 때 취임한 슈요크 대통령
“5월31일까지 물러나” 최후통첩 거부
머저르 “헌법 고쳐 대통령 내쫓을 것”

헝가리에서 16년간 장기 집권한 오르반 빅토르 전 총리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머저르 페테르 신임 총리가 슈요크 터마시(70) 대통령에게 거듭 사임을 촉구했다. 머저르 총리는 오르반 정권 시절 취임한 슈요크 대통령이 끝내 퇴진을 거부하면 헌법을 고쳐 대통령을 해임한다는 방침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헝가리에서 실권은 의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있고 대통령은 의례적·상징적 국가원수 역할만 수행한다.

헝가리의 머저르 페테르 신임 총리(왼쪽)와 슈요크 터마시 대통령. 의원내각제 국가인 헝가리에서 실권은 의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있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의례적·상징적 역할만 수행한다. 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머저르 총리가 슈요크 대통령에게 제시한 자진 사퇴 기한인 5월31일이 지났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야당이던 티서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 티서당 대표인 머저르 총리는 슈요크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은 헝가리 국가의 통합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며 “5월31일까지 스스로 물러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다.

 

헝가리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지난 2024년 3월 오르반의 지원 아래 헝가리 국가원수에 오른 수요크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29년 3월까지다. 수요크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들어 “5년 임기를 다 채우겠다”며 버티는 중이다.

 

머저르 총리는 슈요크 대통령의 사퇴 시한을 끝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슈요크는 취약한 계층,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 법치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다”며 그를 맹비난했다. 머저르 총리는 이날 대통령 관저로 직접 찾아가 담판을 시도했다. 그러나 슈요크 대통령은 “나의 사임이 초래할 헌법적 위기 상황은 사회 분열을 심화시키고 헝가리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을 훼손할 수 있다”며 종전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르반 빅토르 전 헝가리 총리(왼쪽)가 현직 시절 슈요크 터마시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슈요크 대통령은 헌재소장으로 재직하던 2024년 당시 오르반 총리의 지원 아래 대통령에 선출됐다. SNS 캡처

현재 헝가리 의회에서 여당인 티서당의 의석은 재적 의원의 3분의 2가 넘는다. 이는 독자적인 헌법 개정도 가능한 숫자다. 헝가리는 한국의 대통령 탄핵심판 같은 제도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 도중 그를 물러나게 하려면 먼저 헌법에 관련 규정부터 만들어야 한다. 머저르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법을 고쳐 대통령을 해임하겠다”며 “슈요크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리는 데 1개월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으로 내려앉은 오르반의 피데스당은 머저르 총리를 겨냥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4월 총선 패배 후 오르반은 의원직에서 물러났으나 피데스당 대표 직위는 계속 유지하는 중이다.

 

법률가인 슈요크 대통령은 오르반 정권 시절인 2014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다. 이어 2016년에는 헌법재판소장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오르반은 2024년 전임 대통령이 비리 스캔들에 연루돼 스스로 물러난 뒤 슈요크 당시 헌재소장을 피데스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내정하고 적극 지원했다. 헝가리 대통령은 국민 직선이 아니고 의회 의원들의 투표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