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매달 낸 이자의 행방…지디 30억·박보검 12억, 인간 가격표 매기는 은행들

서민 이자로 채운 금고가 모델료로 치환되는 과정, 점유율 전쟁에 매몰된 은행의 냉혹한 계산법

당신이 매달 내는 은행 이자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대한민국 5대 시중은행이 한 해 동안 브랜드 유지와 마케팅 명목으로 시장에 쏟아붓는 비용이 사상 처음으로 8000억원을 돌파했다. 서민들이 고금리 기조 속에서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밤낮으로 흘린 땀방울이 시중은행의 금고를 채우고, 이 자금은 다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톱스타들의 이름값과 몸값으로 바뀌어 흘러 들어간다. 자본주의 시장의 철저한 수요 공급 법칙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8000억원의 마케팅 전쟁, 금융권이 당신의 이자를 투입해 확보한 ‘가장 비싼 권력’. 하나은행·신한은행 제공

지난 5월 26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과 금융권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집행한 연간 광고 선전비 합산액은 사상 처음으로 8000억원 선을 넘어섰다. 은행별 내역을 살펴보면 하나은행이 지난해 1776억원의 광고 선전비를 집행하며 금융권 전체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아이브 장원영을 전면에 내세운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1773억원의 비용을 지출하며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신한은행은 1576억원의 광고 선전비를 기록했고 농협은행과 국민은행 역시 각각 1400억원과 1500억원 안팎의 비용을 마케팅 시장에 투입한 것으로 공시됐다.

 

이 막대한 자금의 흐름은 철저하게 계산된 숫자에 의해 스타 개인의 몸값으로 치환된다. 지난해 1576억원을 집행한 신한은행은 이 중 연간 12억원을 배우 박보검의 단독 모델 기용비로 지불했다. 농협은행의 경우 기존 모델이었던 배우 변우석의 몸값이 작년 한 해 동안 두 배 가량 급등하면서 1년 계약 기준 10억원 안팎의 조율이 이루어졌다. 농협은행은 현재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박지훈과 새로운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서민의 이자로 운영되는 거대한 자본의 현장,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간 8000억원의 자금 순환. 뉴시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멀티 모델 전략을 구사하는 하나은행의 예산 배분 방식은 더욱 세분화되어 있다. 하나은행은 손흥민, 안유진, 임영웅, 강호동, 지드래곤 등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상징하는 톱스타들을 대거 섭외했다. 이 중 파격적인 모델 기용으로 화제를 모았던 지드래곤의 연간 모델료는 약 30억원 선으로 추산되며 업계 최고 수준의 단가를 기록했다. 경쟁사인 KB금융의 상징적인 메인 모델로 장기 활약 중인 김연아는 편당 10억원, 배우 박은빈은 연간 최소 7억원의 조건으로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넘나드는 액수 차이는 시장 지배력에 따라 철저하게 매겨진 자본주의식 등급 구도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금융권 마케팅 부서가 모델을 선정할 때 작동하는 등급 분류 체계는 철저한 비즈니스 계산에 기반한다. 은행 내부 마케팅 실무진은 모델 후보군의 인지도, 호감도, 사생활 리스크 검증 점수를 숫자로 환산해 평가 지표로 사용한다. 나이와 성별, 특히 해당 팬덤이 가진 실제 구매력과 주거래 은행 변경 가능성을 계량화하여 단가를 책정한다. 임영웅이나 변우석의 포토카드 한 장, 팬사인회 응모권 한 장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층이 기존 주거래 은행을 해지하고 수천만원짜리 예적금 계좌를 신규 개설하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단순한 이미지 제고를 넘어 수조원의 수수료 수익과 예수금 유치로 직결되는 가장 확실한 비즈니스인 셈이다.

팬덤의 구매력을 숫자로 환산해 단가를 책정하는, 냉정하게 설계된 자본주의식 등급 구도.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투자 규모가 클수록 시중은행이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의 깊이도 깊어진다. 대중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은행 특성상 메인 모델의 사생활 논란이나 법적 공방은 브랜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광고 계약서에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품위유지의무 조항이 명시되며, 리스크 발생 시 실제 지급된 몸값의 2배에서 3배에 달하는 위약금 청구 소송 제기가 철저한 사후 관리 절차로 자리 잡았다. 과거 모 시중은행이 메인 모델의 돌발 리스크로 인해 수십억원 규모의 광고를 전면 폐기했던 경험은 은행들이 더욱 안전하고 검증된 톱스타 권력에 자금을 투입하도록 이끄는 배경이 되었다.

톱스타의 명성에 수십억을 베팅하고 위약금 조항으로 촘촘히 엮인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법.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시중은행의 광고비 집행은 돈의 냉정한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민들이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라 허덕이는 사이에 시중은행들은 역대급 이익을 올리며 한 해 8000억원의 돈을 광고 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내가 낸 이자가 톱스타의 수십억원짜리 모델료로 들어간다는 팩트는 은행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비판 여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명 모델을 쓰지 않으면 당장 경쟁 은행에 예금과 고객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이 현실이다. 이 천문학적인 숫자의 나열은 오늘날 대한민국 금융권과 연예계가 철저한 계산 속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실상을 그대로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