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지 마, AI가 먼저 찾아줄게…커머스 ‘선제적 큐레이션’ 시대로

쇼핑앱을 켰지만 검색창에 무엇을 입력할지 망설이는 순간이 있다. 사고 싶은 옷은 있지만 정확한 상품명은 모르고, 여러 조건을 비교하다가 구매를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커머스 업계는 이런 소비자들의 탐색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무신자 제공 

3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3월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5조577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3% 늘었다. 

 

이 가운데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19조4088억원, 전체 온라인쇼핑의 75.9%를 차지했다. 소비자는 이미 모바일 화면 안에서 옷을 고르고 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얼마나 빨리 ‘살 만한 것’을 만나느냐다.

 

무신사가 새로 도입한 ‘AI 트렌드 큐레이션’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용자가 직접 검색어를 넣고 필터를 누르기 전에, AI가 먼저 트렌드를 읽고 상품을 묶어 보여주는 방식이다.

 

기존 개인화 추천이 과거 구매 이력, 클릭 기록, 장바구니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품을 붙였다면 이번 모델은 한 발 더 앞선다. 플랫폼 안의 행동 데이터뿐 아니라 외부에서 움직이는 패션·뷰티 트렌드 흐름을 AI가 포착하고, 이를 실제 상품 속성과 연결한다.

 

쉽게 말해 ‘내가 산 것과 비슷한 상품’을 보여주는 데서 ‘요즘 뜨는 스타일 중 내게 팔릴 만한 상품’을 먼저 꺼내는 쪽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동안 이커머스 검색은 목적이 뚜렷한 소비자에게 유리했다. ‘검은색 반팔 티셔츠’, ‘나이키 볼캡’, ‘여름 샌들’처럼 원하는 상품이 분명해야 검색 결과도 빨리 좁혀졌다.

 

반대로 “요즘 뭐가 괜찮지”라는 마음으로 들어온 소비자는 오래 헤맬 수밖에 없었다. 카테고리는 넓고, 상품은 많고, 필터는 촘촘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구매 결정은 오히려 늦어진다.

 

무신사가 주목한 대상은 이 ‘발견형 소비자’다. 특정 상품을 사러 들어온 사람보다, 새로운 스타일을 찾으러 들어온 사람을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플랫폼에서 체류 시간은 길지만 전환이 늦은 이용자를 어떻게 구매까지 연결하느냐가 핵심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면은 단순하다. 사용자는 복잡한 검색식을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특정 테마나 취향에 가까운 버튼을 누르면 관련 상품이 묶여 나온다. 그러나 뒤에서는 비정형 트렌드 데이터를 수집하고, 키워드를 정리하고, 상품 태그와 자동으로 맞추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돌아간다.

 

무신사는 첫 적용 대상으로 캡과 야구모자 등 모자 카테고리를 택했다. 여름철 수요가 빠르게 붙고, 스타일 변화에도 민감한 품목이다. 작은 카테고리에서 데이터 정밀도와 추천 품질을 먼저 확인한 뒤 패션·뷰티 전 영역으로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무신사는 앞서 AI 기반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추천 상품 구매 전환율이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큐레이션은 추천 기술을 단순 개인화에서 실시간 트렌드 대응으로 확장한 단계다.

 

해외에서는 이미 비슷한 흐름이 뚜렷하다. 쉬인은 대표적인 ‘실시간 트렌드 감지’ 모델로 꼽힌다. 소셜미디어와 검색 흐름, 경쟁사 사이트의 반응을 분석해 트렌드를 읽고, 소량 생산으로 시장 반응을 시험한 뒤 잘 팔리는 상품을 빠르게 늘리는 방식이다.

 

쉬인의 강점은 AI와 데이터를 상품 노출에만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렌드 감지가 생산과 재고 운영까지 이어진다. 소비자가 많이 찾기 시작한 디자인을 빠르게 만들고, 반응이 약하면 크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패션의 속도를 데이터로 줄인 모델이다.

 

잘란도는 탐색 경험 쪽에서 앞서갔다. 잘란도 AI 어시스턴트는 위치, 날씨, 행사 성격 같은 맥락을 이해해 옷차림을 제안한다. ‘11월 바르셀로나에서 아버지 환갑 모임에 무엇을 입을까’처럼 자연어로 물으면 상황에 맞는 스타일을 추천하는 식이다.

 

이 흐름은 무신사가 겨냥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소비자가 검색어를 정리하기 전에, 플랫폼이 먼저 맥락을 읽고 선택지를 줄여주는 것이다. 커머스의 경쟁축이 가격과 상품 수에서 ‘탐색 피로를 얼마나 줄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의 AI 활용도 넓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상품 상세 페이지, 룩북, 이미지 생성처럼 콘텐츠 제작 영역이 중심이었다. 이제는 추천, 검색, 큐레이션, 전환율 개선처럼 매출과 직접 연결되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신사는 상품 상세 페이지와 룩북 제작 과정에서 AI 기반 이미지 생성 기술을 시험해왔다. 체형별 착용 이미지나 다양한 스타일링을 자동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번 AI 트렌드 큐레이션은 이런 실험이 콘텐츠 제작을 넘어 쇼핑 동선 자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복 브랜드 지센은 2025 F/W 시즌 패션 필름을 AI로 제작했고, 신세계톰보이의 보브는 AI 실사 모델 ‘빅토리아’를 공개했다. AI 모델, AI 룩북, AI 추천이 따로 움직이던 단계에서 이제는 하나의 커머스 흐름으로 묶이는 중이다.

 

관건은 ‘정확도’다. 패션은 숫자만으로 팔리지 않는다. 같은 ‘볼캡’이라도 챙의 길이, 깊이, 로고 크기, 얼굴형과의 어울림에 따라 반응이 갈린다. AI가 트렌드 키워드를 잘 잡아도 상품 묶음이 평범하면 소비자는 금방 이탈한다.

 

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추천은 정교해질 수 있다. 반대로 잘못된 태그와 부정확한 이미지, 유행과 동떨어진 키워드가 섞이면 큐레이션은 또 다른 광고 지면처럼 보일 수 있다. 선제적 추천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AI가 고른 상품을 사람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검색 중심 쇼핑에서 추천 중심 쇼핑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며 “AI가 소비자 취향과 트렌드를 먼저 읽어 제안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플랫폼 체류시간과 구매 전환율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