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세 불편한 몸도, 섬마을 먼 길도 막지 못했다… ‘한 표의 힘’ [6·3 국민의 선택]

전국 투표장 스케치

고령에도 투표권 포기 않고 행사
서해5도 등 섬주민들 발길 이어
국적 취득 이주여성도 주권 행사
생애 첫 투표 청년, 설렘 속 마쳐

배 타고 2시간 걸려도, 100세의 불편한 몸이지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3일 이른 아침부터 전국의 각 투표소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발길로 북적였다. 특히 10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손주들의 취업을 걱정하며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부축을 받으면서 투표장에 나와 주목을 받았다.

희망을 담아 ‘쏙’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은 충남 논산 양지성당 유복엽 큰훈장 가족이 연산면의 한 투표소를 찾아 기표용지를 넣는 모습. 논산·광주·부산=뉴시스·연합뉴스

이날 오전 광주 동구 계림1동 제2투표소를 찾은 110세의 김정자 어르신은 주름진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6장의 투표 용지를 받고 기표까지 무사히 마쳤다.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김 어르신은 “청년들의 취업이 잘되고,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잠시 고개를 숙여 기도했다. 1963년 10월15일 치러진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투표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표권을 포기한 적 없는 김 어르신은 평소 주간보호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건강을 지켜오고 있다.

 

전북 전주에 사는 106세의 김계순 어르신도 이날 완산구 삼천3동 투표소에서 딸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를 마쳤다. 김 어르신은 “걷기 힘들고 숨은 차지만 이 나이에 투표하러 온 만큼 당선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투표소에 오가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린 강원 화천군 파로호 인근 주민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1940년대 화천댐 건설 이후 육로가 끊기면서 ‘육지 속 섬마을’로 불리는 오지인 동촌1리 주민 2명은 화천군이 지원한 행정선을 타고 풍산초교의 투표소를 찾았다. 투표를 마친 뒤 같은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만큼 왕복 이동 시간만 2시간이 훌쩍 넘는다. 다리를 다쳤지만 투표소를 찾은 권모(79) 할머니는 “6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다”며 “몸은 불편하지만 소중한 권리인 만큼 꼭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계림1동 제2투표소에서 110세 김정자 할머니가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넣는 모습이다. 논산·광주·부산=뉴시스·연합뉴스

서해 최북단 서해5도 섬 주민들의 투표 행렬도 이어졌다. 서해5도를 포함해 134개 섬으로만 이뤄진 인천 옹진군의 투표소는 백령도 4곳, 영흥도 3곳, 연평도 2곳 등 모두 25곳에 마련됐다. 백령공공도서관에 마련된 백령면 제1투표소에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올라 투표에 참여했다. 또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 수녀 등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백령도 주민 김모(70)씨는 “개인 일정이 있어서 투표를 일찍 했다”며 “이번 선거로 백령도와 옹진군, 인천시가 더욱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충북에서는 올해 국적을 취득한 결혼이주여성과 다둥이 가족이 함께 투표장을 찾아 주변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날 오전 10시쯤 영동군 심천면 복지회관에는 아홉 자녀를 둔 이인수(57)·안재선(47)씨 부부가 투표권을 가진 3명의 아들·딸과 함께 단체 투표에 나섰다. 이씨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다섯 식구가 서둘러 투표장을 찾았다”며 “내년에는 넷째도 성인이 돼 앞으로 투표 인원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비슷한 시간 옥천군 옥천읍 군남초등학교 투표소에는 베트남 출신인 호티빗응억(24)이 남편의 손을 잡고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다. 2022년 결혼해 두 자녀를 둔 그는 3월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했다. 호티빗응억은 “난생 처음 투표에 참가했고, 남편과 선거 공보물 등을 꼼꼼히 읽으면서 표를 줄 후보도 정했다”며 “투표를 했더니 비소로 한국 국민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부산 부산진구 부암1동 제4투표소를 찾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기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장면. 논산·광주·부산=뉴시스·연합뉴스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진 18, 19세 청년들은 설렘과 긴장 속에서 투표를 마치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만 18세 이상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2007~2008년생들이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6월 대입 모의평가를 하루 앞둔 고3 수험생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까지 청년 유권자들의 신분도 다양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혜화동 제2·3투표소에서 만난 이모(18)양은 “공약집을 꼼꼼히 보고 왔는데 막상 투표소에 오니 뽑아야 할 사람이 많았다”며 “한 표를 행사해서 내 뜻이 전달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