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 연료와 민간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한미 간의 협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도 '조속한 성과 도출'에 공감하면서 양국 정상이 작년 10월에 합의하고서도 그간 지연됐던 후속 협의가 본궤도에 오르는 양상인데 미국 국내 정치 상황과 통상 현안 등이 앞으로 협의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지목된다.
외교부는 협의를 마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양측은 가능한 조속히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며, 연중 성과를 점검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 향후 협의를 가속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양측은 이번 협의에서 "대략적인 방향성이 포함된 타임라인"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르면 내달 미국 워싱턴DC에서 2차 회의를 할 계획이다.
방향성과 관련해 이번 협의에서는 한국에 농축·재처리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기존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을 개정하는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협정하에서 한국은 미국이 서면으로 합의하는 경우에만 농축과 재처리가 가능하며 우라늄 농축은 20% 미만 수준으로 제한된다.
서면 합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라 정부는 이보다 더 폭넓은 권한을 확보하고자 노력해왔다.
흔히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일본의 경우 20% 이상으로 농축할 경우에만 미국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며, 20% 미만인 경우에는 동의가 필요 없다.
다만 정부가 목표치를 너무 높게 설정하면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부담이 있다. 기존 협정의 경우 2010년에 시작한 개정 협상이 2015년에야 마무리됐다.
이에 정부는 협상에 소요될 시간과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성과를 저울질하며 협정 전면 개정보다는 부분 개정이나 약정을 통한 권한 확보 등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추진 방향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급부상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을 인정해 양국이 범태평양 핵연료 공급망을 구축하면 미국에도 이익이라는 접근으로 미국을 설득해왔다.
핵잠수함의 경우 핵연료 수급에 필요한 주요 협력 사항 등을 이번에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원자로와 핵추진체계를 국내에서 직접 개발하고 핵연료인 저농축 우라늄만 미국에서 공급받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기존 원자력 협정은 원자력발전소 운영 등 민수용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군사용인 핵잠수함 핵연료를 받으려면 별도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선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고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핵잠수함 연료를 제공하기로 한 국가는 지금까지 영국과 호주 둘뿐이다.
미국은 1958년에 체결한 미·영 상호방위협정에 따라 영국에 핵잠수함에 필요한 원자로와 연료, 기술, 정보 등을 제공했다.
다만 영국은 협정 체결 당시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핵보유국이 아닌 호주가 미국, 영국과 2024년에 서명한 오커스(AUKUS) 합의가 한국이 참고하기에 더 적절한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한국은 호주와 달리 원자로와 추진체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려고 하며, 고농축이 아닌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쓴다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오커스처럼 협의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인식이다.
정부가 속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는 동안 핵잠수함·원자력 합의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진전시켜야 한다는 긴박감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미국 조야의 전통적인 핵 비확산 기조를 고수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결단으로 이뤄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 동력을 상실해 이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다분하다.
정부가 2차 회의를 이르면 내달로 추진하는 것도 집권 공화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기 전에 최대한 진전을 이루겠다고 의도로 해석된다.
한미 협의에 지장을 줄 또 다른 요인으로는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미국 내 우려가 있다.
오커스 사례를 보면 미국은 핵기술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거나 유출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를 방지할 핵물질 통제, 정보 보안 등의 조치를 상대방에게 요구했는데 이번 협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 합의와 사실상 연계된 통상 합의의 이행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당초 정부는 안보 분야 협의가 올해 초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이 한국의 대미 투자 속도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대응을 문제 삼으면서 이달에야 열렸다.
그간 정부가 대미 투자 문제를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쿠팡 사건에 대한 정부 입장을 꾸준히 설명한 덕분에 현재는 두 사안이 이전처럼 안보 협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통상 분야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미국은 대미 투자 등 통상 합의 이행을 사실상 안보 합의 이행의 선결 조건으로 여기고 있어 통상 갈등이 다시 안보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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