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에서 천안시장까지…장기수, 30년 천안 정치의 문법을 바꾸다 [6·3의 선택]

관료·국회의원 독점했던 시장 자리, 30년 만에 시민운동가가 차지
전직 시장·국회의원·고위관료 모두 넘고 본선서 박찬우까지 제압

시민운동가였다.

 

주민자치와 지방분권을 외치며 거리와 골목을 누볐고, 지역 현안이 있는 곳이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화려한 중앙정치 경력도, 행정고시 합격 이력도 없었다. 대신 시민사회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딪히며 쌓은 경험이 정치 자산의 전부였다. 그 시민운동가가 결국 천안시장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수 천안시장의 당선은 단순한 선거 승리가 아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30년 동안 이어져 온 천안 정치의 권력 구조와 성공 공식을 뒤집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3일 밤 천안시장 당선이 확정된 장기수 당선인(오른쪽 두번째)이 선거사무소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들어 올리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관(천안을)의원, 이정문(천안병)의원, 장기수 당선인, 문진석 의원.

천안은 오랫동안 관료와 국회의원이 시장직을 이어온 도시였다.

 

초대 민선 시장인 고 이근영 시장은 관선시장 출신으로 재선에 성공했고, 이후에는 국회의원 출신 성무용 시장이 내리 3선하며 12년 동안 시정을 이끌었다. 뒤이어 국무총리실 고위관료 출신 구본영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고, 구 시장의 당선무효형 확정으로 2020년 총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는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출신인 박상돈 시장이 당선됐다. 박 시장 역시 2022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지난해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 동안 천안시장 자리는 사실상 중앙부처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출신들이 차지해 왔다. 행정 경험과 중앙정치 경력이 시장 당선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 흐름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시민운동가 출신 장기수가 천안시의원과 시의회 부의장, 충남청소년진흥원장 등을 거치며 지역에서 성장한 정치인으로서 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 이력은 일반적인 정치인들과 결이 다르다. 오랫동안 시민사회에서 주민자치와 지방분권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천안시의원으로 두 차례 선출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충남청소년진흥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위,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을 맡으며 정책 역량도 쌓았다.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은 "시민운동 13년, 의정활동 8년, 기관장 4년"이다. 중앙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 정치인이 아니라 천안에서 성장한 토박이 정치인이라는 의미다.

 

정치권에서는 그를 "20년 동안 천안시장을 준비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그의 선거 캠프와 SNS에는 "2006년부터 천안시장을 준비해 왔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시의원 시절부터 교통, 도시개발, 청년정책, 자치분권 등 지역 현안을 꾸준히 다뤄 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고속철 선로 위에 낡은 디젤기관차가 멈춰선 모습이 지금의 천안"이라며 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내세운 대표 브랜드는 세대교체, 산업교체, 행정교체등 '3대 교체'였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도시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장기수의 정치 실험은 민주당 경선에서 먼저 검증됐다. 당시 민주당 천안시장 경선은 전직 시장, 전직 국회의원, 청와대 출신 정치인, 고위 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거 출마한 사실상 '엘리트 정치인들의 경연장'이었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시민운동가 출신 장기수였다. 8명이 경쟁한 1차 경선을 통과한 뒤 2차 본경선과 결선까지 모두 승리하며 민주당 후보가 됐다. 당심과 민심을 모두 얻으며 단순한 반사이익이 아닌 자력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시민들이 새로운 천안을 요구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장기수의 '엘리트 정치 넘어서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본선 상대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행정안전부 차관과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박찬우 후보였다. 박 후보 측은 선거 과정에서 중앙정부 경험과 행정 전문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반면 장기수는 시민운동가와 시의원 경력을 바탕으로 시민 중심 행정과 생활밀착형 정책을 강조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화려한 경력보다 현장 경험을 선택했다. 장기수는 박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리며 천안시장에 당선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당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30년 동안 이어져 온 '관료·국회의원 시장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 시대를 연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거 메시지는 단순했다. "천안을 바꿀 시간.그리고 일하는 시장."

 

365 공공서비스, 자율주행버스, 직산역 에코신도시, 민생경제 회복, 지역화폐 확대 등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거창한 정치 구호보다 생활 속 변화를 먼저 이야기했다.

 

장기수 현상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지방정치의 변화다.

 

중앙정치 경력과 관료 경력이 경쟁력의 전부였던 시대에서 지역 현장 경험과 시민사회 활동도 충분한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장기수의 승리는 한 정치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천안 시민들이 어떤 시장을 원하는지 보여준 결과"라며 "관리형 시장보다 변화형 시장, 엘리트 정치보다 현장 정치를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선에서 7명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선이 유력한 여당후보로 선출된 다음날 새벽 환경미화원들을 찾아간 정치인. 20년 동안 골목과 현장을 누빈 시민운동가.그리고 30년 천안 정치의 공식을 깨고 시장에 오른 사람. 장기수의 당선은 결국 한 사람의 승리세대교체, 산업교체, 행정교체의 첫 출발점이 됐다.

 

개표가 진행과정에서 당선이 유력해지자 3일 밤 장기수 후보 선거사무소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진석·이정문·이재관 국회의원이 찾아와 축하를 전하며 민선 시정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당선을 축하하러 온 시민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부터 더 잘해야 한다.”며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장 후보자는 당선 인사를 통해 "오늘 시민 여러분께서 천안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셨다"며 "이 영광은 장기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더 나은 천안을 꿈꾸어 온 시민 여러분 모두의 승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