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카르마의 기록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다큐멘터리 ‘회생’은 채권과 채무 때문에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원지방법원 앞 작은 법무사 사무소에서 시작한다. 몇 평 되지 않는 좁은 사무소에 있는 직원이라고는 법무사와 사무원 단둘뿐이다. 사무원은 다큐멘터리의 화자인 ‘나’로 8년 전 군대 제대 후 법무사인 아버지의 사무원이 되었다. 아버지가 사무소의 운영 적자를 메우기 위해 코인과 주식을 하는 바람에 평생 갚아야 할 만큼의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다던 ‘나’는 이제 사무원이 되어 판사에게 읍소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한다.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의 법적 절차를 대신 맡아 처리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법무사가 도리어 빚더미에 올라 있다는 아연한 현실은 이 다큐멘터리의 러닝타임이 흐르면서 더욱 극적인 현실과 병치된다.

 

‘회생’의 영문 제목은 ‘카르마’다. 김면우 감독은 빚이라는 관념을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작품의 연출 의도를 밝힌다. 사무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물론 아버지와 ‘나’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빚이었기 때문도 있겠다.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회생’은 이내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나’는 어느 암자를 찾아 어머니와 마주 앉는다. ‘나’가 사무소에서 아버지를 ‘법무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는 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스님’이라고 부른다. 비구니였던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역시 비구였던 ‘나’의 외조부가 절을 지으며 남긴 빚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다. 수적 관념에 불과하면서 살아 있는 인간에게 고통을 안기는 빚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인과(因果)를 뜻하는 카르마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이 다큐멘터리에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결국 운명의 조화라고 불러도 좋을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삶이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외가와 친가의 조부에게 일어난 경제적 부채와 월남전 참전의 부채는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진다. 빚에 내몰렸던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며 곁에 머물고, 개인 회생과 파산을 업 삼던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매일을 살아간다. 새삼 다큐멘터리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족의 역사에서 기이할 정도로 반복 재생되는 유사한 사건이 카메라에 담겨 재정렬되는 동안 이 다큐멘터리는 그 기이함을 설명하지 않고도 사건 그 자체로 시선을 붙든다.

 

근래의 사적 다큐멘터리가 종종 난감해지는 지점은 그 고백을 왜 관객이 함께 들어야 하는지 끝내 설득하지 못할 때다. ‘회생’의 이야기는 한 가족의 특수한 불운에 갇히지 않는다. 빚은 혈연 안에서만 맴도는 사연이 아니라 법원 앞 사무소를 드나드는 얼굴들과 이어지고 한 사람의 실패로 정리되지 못할 사회적 형태로 번져간다. ‘회생’은 ‘나’와 그 가족의 삶을 지켜보는 와중에 채무자와 조력자, 상속자와 생존자로 동시에 놓이는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