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환경사투리, 기후표준어

요즘 환경이란 단어는 왠지 옹색
기후보다 투박·예스럽게 느껴져
성장과 효율에 익숙한 사회지만
소중하기에 꼭 지켜내야 하는 것

표준어: 명사 1. (언어) 한 나라가 언어의 통일을 위하여 표준으로 정한 말.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사투리: 명사 1. (언어)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 (‘고려대 한국어사전’)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를 계기로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산업화로 누적된 오염과 생태계 훼손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전 세계 113개 국가가 사상 처음으로 환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여기서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됐다. 인간의 건강과 경제성장, 기술 발전은 깨끗한 자연, 안정된 기후, 건강한 생태계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환경의 날이 제정됐다.



환경: 명사 1. (기본의미) 인간이나 동식물 따위의 생존이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 조건이나 상태. 다른 말로 물과 공기, 동물과 식물, 지구와 인간, 그러니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환경’이다. 그런데 요즘엔 환경이라고 하면 어딘가 협소하고 옹색하게 들린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기후, 에너지 같은 단어가 부상하면서 환경은 이 거대한 의제를 담기엔 뭔가 부족한 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분야 시민사회에 발 담그고 있지만 ‘저희는 환경단체는 아니고요…’, ‘환경이라고 말하긴 그렇고 기후·에너지 쪽 일을 합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나 역시 환경보단 기후라는 수식어를 선호한다. 왜?

우선 떠올려 볼 수 있는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기후 대응이 급선무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전환을 중심으로 환경문제가 예각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집중해야 할 문제가 선명해지면서 환경이라는 큰 범주의 단어로는 핵심을 또렷하게 드러내기 어려워졌다.

두 번째 이유는, 감히 짐작건대 각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 때문 아닐까 싶다. 에너지는 중요하고, 기후는 트렌디하지만, 환경은 예스럽고 투박하다는 느낌 말이다. 기후와 에너지 부문은 내러티브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어 통일을 위해 표준으로 정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표준어를 구사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권’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사고팔게 하고, 기후변화 피해를 금융 리스크로 정량화해 투자와 기업 경영의 변수로 편입시킨다. 석탄발전소를 ‘좌초자산’으로 규정해 조기 폐쇄를 손실 회피 전략으로 만들고,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성장산업이자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할 전략 자산으로 다룬다. 최근 기후·에너지 분야가 구사하는 언어는 기후변화에 큰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은 자본주의 시대의 표준어에 가깝다.

이에 비하면 전통적인 환경 분야의 화법은 가치와 당위, 책임과 절제를 강조한다. 말하자면, 환경을 1순위 가치로 둔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사투리인 셈이다. 금개구리와 선제비꽃, 아고산지대와 새만금 갯벌의 고유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 자체로 보존을 꾀하려는 시도는 좌절되기 일쑤다. 온난화는 모든 생물종의 안녕을 위협하고, 취약계층부터 흔들기에 그 자체로 부정의하지만, 도덕적 당위만으론 성장과 효율이란 문법에 익숙한 사회의 공용어가 되기 어렵다. 그리하여 요즘엔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도 ‘자연자본’이니 ‘생물다양성 크레디트’이니 하는 개념을 앞세우기 시작했는데, 제도 안착을 바라는 마음과 별개로 왠지 쓴맛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투리를 고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 또한 처음 이 분야에서 접한 언어가 환경사투리인지라 꾸역꾸역 기후표준어로 말투를 바꾸려 애쓰는 중이지만,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불안해진다. 편익과 효율의 언어가 측정되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다.

그래서 환경의 날은 오늘만큼은 맘 편히 환경사투리를 쓰고 싶다. 어떤 것들은 유용해서가 아니라 소중하기에 지켜야 한다고.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