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잔이 다시 진열대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사은품이 아니라 ‘굿즈’다. 월드컵과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유통업계가 맥주, 하이볼, 생활용품, 스포츠 스타를 한데 묶은 협업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술 소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이런 흐름을 키웠다.
5일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의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1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9.0% 줄었다. 관련 통계 개편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물가 영향을 반영한 명목 소비지출도 7.5% 감소했다. 단순히 술을 많이 파는 방식만으로는 성수기 효과를 만들기 어려워진 셈이다.
하이트진로는 4일 맥주 브랜드 테라와 생활용품 기업 락앤락이 협업한 ‘TERRA X LocknLock’ 스테인리스 보냉컵 2종을 출시했다. 470㎖ 맥주컵형과 600㎖ 텀블러형으로 구성됐다. 락앤락의 보냉 기술을 적용해 테라의 탄산감을 차갑게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품 외형은 스테인리스 소재를 살리고, 테라 로고를 각인했다. 패키지에는 테라의 상징색인 그린 컬러를 입혔다. 판매는 전국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번 협업은 오는 11일 개막하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과 여름 야외활동 수요를 함께 겨냥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테라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시원하게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협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와 락앤락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회사는 지난해 10월 참이슬·진로와 락앤락 협업 제품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폴딩박스, 텀블러, 밀폐용기, 도시락, 지퍼백 등 홈술과 캠핑에서 쓰기 쉬운 생활용품이 중심이었다.
참이슬의 연두색, 진로의 하늘색, ‘이슬방울’과 ‘두꺼비’ 캐릭터를 락앤락 제품에 입힌 방식이었다. 협업 품목은 총 21종으로 구성됐고, 이마트 쇼핑 행사 일정에 맞춰 판매됐다.
지난해 협업이 소주 브랜드의 색과 캐릭터를 생활용품에 얹은 방식이었다면, 이번 테라 협업은 맥주의 음용 경험에 더 가깝다. 컵 자체가 상품의 핵심이다.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라는 기능을 보냉컵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경쟁사 오비맥주 카스는 월드컵 공식 스폰서 지위를 앞세운다. 카스는 국내 주류 브랜드 가운데 유일한 FIFA 월드컵 2026 공식 스폰서이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파트너다. 한정판 ‘원팀 에디션’을 출시하고, 광고와 직관 이벤트, 소비자 참여형 행사를 순차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카스가 공식 스폰서십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테라는 손흥민 카드를 꺼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손흥민을 앞세운 ‘테라 X SON7’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다. 손흥민 사진과 사인, ‘찰칵 세리머니’ 이미지를 제품 디자인에 반영했다. 병과 캔, 페트 등 여러 용량으로 제품을 넓혀 월드컵 전부터 축구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식 스폰서와 스타 모델.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경기 전후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편의점업계도 협업 주류 경쟁에 뛰어들었다.
CU는 걸그룹 에스파와 협업한 ‘에스파 레모네이드 하이볼’을 출시했다. 멤버별 패키지 4종으로 구성하고, 차가운 하이볼을 따르면 색이 변하는 전용 잔이 포함된 기획세트도 한정 판매했다.
GS25는 일본 수제맥주 브랜드 히타치노 네스트,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이 디자인에 참여한 ‘데이지라거’를 선보였다. 맥주나 하이볼이 단순 주류가 아니라 팬덤과 취향을 드러내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월드컵 마케팅의 성격 변화와도 맞물린다. 과거에는 대형 스크린, 거리응원, 치킨과 맥주가 중심이었다. 이번 대회는 한국시간 기준 오전 경기 비중이 있어 밤 시간대 거리응원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12일 오전 11시 체코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응원 방식이 바뀌면 소비 방식도 달라진다. 업계가 홈관람, 캠핑, 피크닉, 팬덤 굿즈에 힘을 주는 이유다. 소비자는 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컵, 패키지, 한정판 디자인까지 함께 산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월드컵 로고나 응원 문구를 붙인 한정판만으로도 관심을 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제로 쓰고 싶거나 갖고 싶은 제품이어야 반응이 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