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4년 초,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 아우디이우카가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전투 과정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한 가지 요인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활공폭탄이었다.
우크라이나군 방공망 밖을 비행하던 러시아 전투기에서 투하된 활공폭탄 수십 발은 수십㎞를 날아가 전선에 구축된 우크라이나군 방어체계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활공폭탄의 위력을 경험한 우크라이나군도 미국·프랑스산 활공폭탄을 쓰면서 자국산을 개발, 공습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유인 전투기에 다수의 무인기를 결합하는 유·무인복합체계나 자폭드론에 열광하는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면,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위력적인 항공무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한국 공군에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십수년짜리 계획과 현실
냉전 이후 취약해진 군사력을 빠르게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흔히 거론되는 무기가 합동전투기(CCA)로 대표되는 유·무인 복합체계와 자폭드론이다.
유·무인 복합체계를 실용화하고자 세계 각국은 전투기에 CCA 운용능력을 추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조차도 Su-57 스텔스기를 2인승으로 개조한 버전을 만들어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에 뛰어들 태세다.
유·무인 복합체계가 미래 항공작전에서 핵심적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F-35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6세대 전투기와 무인기 확보를 목표로 진행중인 프랑스 주도 미래전투항공체계(FCAS)는 2040년 이후에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영국·이탈리아·일본이 개발하는 글로벌전투항공체계(GCAP)도 2030년대 중·후반쯤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다.
4∼4.5세대 전투기에 CCA를 결합하는 것도 현재까진 계획 단계다.
한국의 KF-21에 다수의 CCA를 통합해서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하는 시점은 2030년대 중반쯤이며, 프랑스산 라팔과 CCA 통합은 구상 단계다.
유·무인 복합체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데이터링크, 자율비행, 인공지능(AI), 통신 등 다수의 분야를 통합하는 시스템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체계의 전력화도 영향을 받는다. 6세대 전투기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할 경우엔 전투기 개발 일정도 변수로 작용한다.
때문에 제한적인 능력부터 조금씩 구현하면서 성능을 차근차근 높이는 단계적 전력화 방식을 추구한다.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선 별다른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에선 샤헤드 자폭드론과 루카스 드론이 활약했다.
따라서 기존 무기보다 훨씬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무인 시스템이 전장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상은 다르다. 샤헤드-136 자폭드론은 대당 가격이 2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비용은 훨씬 높다. 전자전 상황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도록 전파방해장비와 통신 모듈 등을 탑재하면, 생산비는 더욱 상승한다.
루카스 드론의 경우엔 스페이스X의 우주 기반 네트워크 이용비가 대당 월 5000∼2만5000달러에 달한다.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생각보다 싸지는 않을 수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자폭드론은 대공포, 요격 드론, 지대공 미사일 등에 격추되기 쉽다.
따라서 수백 대의 드론을 대량으로 발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표적에 도달하는 드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량의 드론을 발사 지점으로 옮겨서 발사 준비를 하고, 임무 계획을 짜고, 발사 지점을 보호하고, 후방에서 군수 지원까지 원활하게 하려면 수천 명의 인력과 다수의 장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운용 교리 수립, 병참·임무 장비 개발과 배치까지 감안하면 ‘저가 자폭드론’이란 개념이 무색해질 수 있다.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재즘(JASSM)이나 타우러스(TAURUS) 같은 장거리 정밀유도무기보다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
낮은 위력도 한계로 지적된다.
샤헤드-136의 탄두 무게는 약 40㎏. 교량이나 건물을 파괴하기는 어렵다. 정유소나 연료탱크처럼 가연성이 높고, 다층 방공망의 위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만 유효하다.
결국 샤헤드로 대표되는 저가 자폭드론은 대규모 운용을 통해 방공망을 소모하고 적국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무기에 가깝다. 전술적으로는 항공무장이 여전히 효과적인 셈이다.
◆공군력 갖췄다면 항공무장 보강이 최선
위기 국면에 대응해 공군력 증강을 추진할 때, 새로운 플랫폼이나 기술 도입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진다.
신규 플랫폼이나 기술 도입은 눈에 확 띄는 효과가 있어 전력증강이 이뤄졌다는 인식을 쉽게 심어줄 수 있다. 군 조직과 인력을 유지·확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 채 공군 전투력을 훨씬 쉽고 빠르게 끌어올리는 방법이 있다. 활공폭탄과 미사일 등 항공무장 재고를 확충하는 것이다.
항공무장의 위력은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공군은 Su-34 전폭기에서 활공폭탄들을 연속 투하, 특정 지역을 완전히 파괴하는 전술을 썼다. Su-35 전투기는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한 채 우크라이나군의 움직임에 대비했다.
우크라이나군도 프랑스산 해머, 미국산 합동정밀직격탄(JDAM) 등으로 러시아군을 정밀타격하는 작전을 사용했다.
자폭드론보다 훨씬 강력한 파괴력, 전투기가 적 방공망 밖에서 안전하게 공습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특성 등은 활공폭탄의 효용성을 더욱 높인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미 국무부로부터 3억 7360만 달러를 들여 JDAM 키트 1500여개를 구매하는 계획을 승인받았다.
자폭드론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우크라이나지만, 활공폭탄의 위력 또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아르메니아는 2019년 러시아에서 Su-30 전투기를 도입했는데, 항공무장을 함께 들여오지 않고 기체만 샀다.
그 결과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선 무용지물로 전락했고,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다. 이같은 문제는 최근에야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미사일 등을 늘려야
한국은 오랜 기간 훈련받은 조종사들과 한·미 연합작전에 의한 선진적 교리, F-15K·KF-16·F-35A 전투기를 보유한 공군을 지니고 있다.
공군은 유·무인 복합체계와 인공지능(AI)의 전면적 활용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같은 기술이 실전에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려면 최소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려면, 충분한 수준의 항공무장 확보에 나서야 한다.
유사시 원거리에서 북한 방공망이나 지휘소 등의 지상 표적을 공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전 투입이 가능한 현대적 항공무장이 부족하다면, 조종사와 기체가 소모되기 전에 공군의 공대지 능력은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과 별도로 한국형정밀유도폭탄(KGGB)과 JDAM을 비롯한 활공폭탄 구매를 늘려야 한다.
유·무인 복합체계가 도입되면, 정밀유도무기보다 훨씬 비싼 소모성 무기가 될 CCA를 대량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때는 항공무장 대량 확보에 필요한 예산 마련이 쉽지 않다.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 이전 단계에서 명중률이 높은 활공폭탄을 사전에 비축하는 것이 유사시 대응 및 탄약 재고 확보 차원에서 필수적인 이유다.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확보도 중요하다. 북한은 신형 공대공·공대지미사일을 개발, 먼 거리에서 한국 공군과 지상표적을 타격할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공군 전투기가 활공폭탄을 투하할 때 북한 공군이 저지를 시도하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로 요격해야 한다.
미국산 전투기는 AIM-120 재고가 있어 큰 문제는 없다.
반면 KF-21은 다르다. KF-21은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는데, 계약된 물량은 100발 정도다. KF-21 블록Ⅰ40대를 완전히 무장시키기도 어렵고, 전시 소요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공군 전투기들이 북한 내 지상표적을 안전하게 타격하려면, 정밀유도폭탄과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비축량을 더욱 늘리는 작업이 필수다.
이는 공군은 한국군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신속한 대응 능력을 갖춘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고, 한국군의 전투력을 증강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