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이크로바이옴 기업들의 시선이 신약 개발실을 넘어 소비자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식이 성분과 프로바이오틱스를 추천하는 ‘맞춤형 웰니스’가 새 수익원으로 떠오르면서다. 시장 기반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 ‘2024년 식품 등의 생산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매출실적은 4조131억원이었다. 건강기능식품 수출액도 3802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고, 이 가운데 프로바이오틱스 수출액은 584억원을 기록했다. 장 건강 제품이 더 이상 틈새 품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6월 3~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IHMC 2026’은 이 흐름을 보여준 자리였다. 신약 후보물질을 내세우던 기업들은 동시에 개인 맞춤형 장 건강, 정밀영양, 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 사업을 전면에 꺼냈다. 임상과 허가에 긴 시간이 필요한 신약과 달리, 분석·추천 서비스는 비교적 빠르게 매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이번 학회에서 장내 미생물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 기반 분석 기술을 앞세웠다. 회사는 자체 인체 장내 생태계 모사 시스템을 활용해 미생물 이용 탄수화물(MAC) 포뮬러를 설계하고, 개인 장 유형에 따른 반응 예측 모델도 제시했다.
핵심은 ‘같은 유산균을 모두에게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 상태와 식습관을 분석한 뒤, 특정 성분에 잘 반응할 사람을 가려내는 방향이다. 회사는 하반기 맞춤형 MAC 솔루션 제품화를 추진하고, 비만치료제 사용 뒤 나타날 수 있는 체중 재증가 문제와 관련한 인체적용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신약 개발도 병행한다. 염증성 장질환을 겨냥한 페칼리박테리움 기반 후보물질 ‘CJRB-201’의 비임상 데이터를 공개하며 파이프라인 가치를 강조했다.
다만 현실은 가볍지 않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2022년 이후 적자를 이어왔고, 주요 파이프라인 상당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신약 기술수출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웰니스 사업을 단순 부업이 아닌 현금흐름 확보 수단으로 보는 이유다.
HEM파마는 맞춤형 웰니스 사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독자 기술인 PMAS를 기반으로 개인의 장내 미생물 반응을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안하는 구조다.
사업의 중심에는 암웨이가 있다. 한국암웨이의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 서비스 ‘마이랩’에 HEM파마 기술이 적용됐고, 일본 시장에서도 반응이 빠르게 나타났다.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일본 맞춤형 장내 미생물 분석 서비스 ‘마이랩 플러스’는 정식 출시 전 단계에서 누적 계약 9만건을 넘어섰다.
성과만 보면 맞춤형 장 건강 서비스의 해외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매출 구조다. HEM파마는 암웨이 의존도가 매우 높다. 특정 파트너의 전략 변화가 곧 실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기술 경쟁력 못지않게 판로 다변화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엔비피헬스케어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비타푸드 유럽 2026’에서 간 건강, 코 건강, 인지 기능, 여성 갱년기, 안구건조, 정신·수면 등 기능성 유산균 포트폴리오를 소개했다.
기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이 ‘장 건강’에 집중했다면, 엔비피헬스케어는 질환·기능별 솔루션으로 세분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서로 다른 균주의 조합을 활용하는 ‘DuoBiome’ 플랫폼도 이 연장선에 있다.
이는 국내 업체들이 단순 유산균 판매를 넘어 임상 근거와 기능성 차별화를 확보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린다. 소비자는 이미 수많은 유산균 제품을 접하고 있다. 앞으로는 ‘무엇에 좋은가’보다 ‘누구에게, 어떤 근거로 맞는가’가 경쟁력이 된다.
마이크로바이옴 기업들이 웰니스 시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약 개발은 성공하면 파급력이 크지만, 임상과 허가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장내 미생물 분석, 맞춤형 식이 추천, 프로바이오틱스 구독 모델은 소비자 접점이 빠르고 반복 매출을 만들기 쉽다.
비만치료제 시장 확대도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GLP-1 계열 약물이 체중 감량 시장을 키우는 사이, 약물 사용 후 식습관 관리와 체중 재증가 방지, 장 건강 관리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입장에서는 약물의 빈틈을 보완하는 시장이 열린 셈이다.
물론 넘어야 할 선도 있다. 웰니스 서비스가 의약품처럼 질병 치료 효과를 말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근거가 필요하다. 개인 장내 미생물 데이터는 민감한 건강정보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도 핵심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바이옴 기업들이 웰니스 사업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라며 “신약 개발에는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수익 기반을 만드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누가 더 많은 임상 근거와 실제 이용자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글로벌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