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책임자 사퇴뿐 아니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해야 [논설실의 관점]

투표용지 부족 사태 파문 갈수록 확산
부실 선거 관리 반복, 외부 통제 자초
국정조사·수사로 엄중한 책임 물어야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파문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유권자들의 참정권이 침해되고, 투표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대한민국 선거사(史)의 참사가 아닐 수 없다.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투표용지를 유권자의 50%만 준비한 건 선관위가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행정 착오는 총체적 기강 해이가 아니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5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허철훈 사무총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선관위는 외부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했다”며 “명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필요하다면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라도 확실한 규명과 제도 개선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철저한 진상 조사는 기본이고, 지위고하를 막론한 엄중한 책임자 문책과 함께 조직 해체 수준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문제는 선관위의 무능과 관리 부실이 거의 고질병 수준이라는 점이다.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때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등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와 쇼핑백에 담아 ‘소쿠리 투표’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에선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가 식사하고 돌아오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에도 선거 당일 오후 투표용지가 모자라자 뒤늦게 다른 지역에서 지퍼백에 담아 수송하는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러니 잦아들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닌가. 부정선거 시위로 봉쇄됐던 투표소에서 철수하면서 유권자 개인정보가 담긴 선거 물품을 그대로 두고 가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어처구니가 없는 행태다. 

 

선관위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기관인지도 의문이다. 선관위는 고위직 자녀의 ‘아빠 찬스’ 특채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선거가 있는 해에 휴직자가 급증하는 기형적 행태가 반복돼 비판을 받았다. 독립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국회,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감시·견제를 받지 않아 문제가 터져도 솜방망이식 ‘셀프 개혁’에 그치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기관은 방만해지고 썩기 마련이다. 독립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방기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선거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의 뼈대다. 이번 사태를 절대로 어물쩍 넘기지 말고 선관위 조직과 선거 관리 시스템을 전면 수술해야 한다. 선거 중립과 관련이 없는 일반 사무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상시적인 직무감찰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법관이 비상임으로 맡고 있는 선거관리위원장을 전직 대법관, 헌법재판관에게 맡겨 상근하는 체제로 만들어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조직 해체 수준의 선관위 개혁만이 선거의 신뢰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