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내 연기는 반세기 기다렸는데, 왜 돈(삼전 주식)은 조급했을까”…‘8천만원’ 고백

성실한 노동자가 자본의 속도를 마주할 때, 70대 박정수가 전하는 뼈아픈 수업료

배우 박정수가 4년 전 S전자에 투입했던 8천만원은 본전 탈출에 급급해 매도 버튼을 누른 직후 거짓말처럼 우상향했다. 반세기 동안 연기라는 외길을 걸어오며 기다림의 미학을 체득했던 베테랑이었지만 근로의 가치가 시장의 흐름 앞에서 부정당하는 순간 그녀의 평정심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실패는 단순히 개인의 투자 손실을 넘어 평생 성실한 노동으로 자산을 지켜온 우리 시대 중년 투자자들이 자본의 언어를 마주할 때 겪는 보편적인 고립을 대변한다.

54년의 연기 외길,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배우 박정수의 진짜 일상. 브라보 마이 라이프 제공

최근 그녀는 유튜브 채널 ‘웬만해선 정수를 막을 수 없다’를 통해 당시의 과정을 담담히 복기했다. 8만원대에 매입한 주식이 5만원대까지 추락하자 수익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고 2년 넘게 원금 회복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인내 끝에 본전 수준에서 매도를 단행한 직후 주가는 8만원과 9만원대를 넘어 치솟았다. 그녀가 느낀 상실감은 수익을 놓친 아쉬움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시장을 버텨온 자신의 인내가 끝내 흐름과 엇갈렸다는 사실에서 오는 허탈함이었다.

풋풋했던 젊은 시절, 굴곡진 무대 위를 지나온 기억의 조각들. 인터넷 커뮤니티

1972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박정수에게 연기는 54년간 단 하루도 멈출 수 없는 생업이었다. 1974년 신인 연기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결혼과 은퇴, 뒤이은 남편의 사업 실패는 그녀를 생존의 기로로 내몰았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거 담당 PD들에게 연락해 일을 부탁하던 시절 그녀가 매달린 것은 대본 암기와 현장 동선 점검이라는 치열한 반복이었다. 15년 가까이 이어진 공백은 스스로 쌓은 자산의 가치를 뼈저리게 각인시켰다. 이 시기 체득한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자본 시장의 변동성보다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근로 소득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치열한 연예계를 지나 마주한 삶의 통찰, 타인과 공유하는 평온의 가치. 유튜브 채널 ‘웬만해선 정수를 막을 수 없다’ 캡처

최근 그녀는 투자 전문가 존 리와 마주 앉아 자신의 실패를 되짚어봤다. 박정수가 “왜 내가 하면 안 되는가”라고 묻자 존 리는 시간의 가치를 언급했다. 투자를 기업의 주인으로서 동행하는 과정이 아닌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도박처럼 접근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존 리의 지적을 들은 박정수는 깊은 침묵 끝에 “내 연기는 반세기 넘게 기다려 완성되었는데, 왜 돈의 흐름 앞에서는 이토록 조급했을까”라며 반문했다. 연기는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 대배우의 자리에 올랐지만 투자는 그 방식을 전혀 다르게 적용해야 함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노력의 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을 믿고 기다리는 투자자로서의 인내를 연기 현장의 인내와 혼동했음을 직시한 셈이다. 이 깨달음은 박정수가 평생 연기를 대하며 쌓아온 기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박정수의 연기는 철저한 현장 적응의 결정체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자신의 분량이 아닐 때도 동료들의 호흡을 세심히 관찰하고 카메라 위치와 조명을 파악해 동선을 맞추는 것을 당연한 책임으로 여겼다. 54년 동안 현장을 지키며 체득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대응의 관성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빛을 발하던 이 대응력은 투자의 영역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다. 기업의 가치에 집중하는 대신 매 순간 요동치는 시세의 등락에만 일희일비했다.

 

이는 평생 땀의 결실을 정직하게 받아온 이들이 자산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자본의 문법을 뒤늦게 마주할 때 겪는 통과의례다.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베테랑조차 이 언어를 익히지 않으면 고립을 피할 수 없다. 박정수의 고백은 그 뼈아픈 교훈이자 연금과 노동 소득만으로 노후를 지탱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제 그녀는 즉흥적인 매매를 멈추고 기업의 실체를 읽는 긴 호흡을 익히는 중이다. 그것이 박정수가 써 내려가고 있는 새로운 투자 공식이다.

흔들림 없이 쌓아온 시간의 무게가 환한 미소로 피어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녀는 주식이라는 낯선 영역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그간 부동산과 예금 위주의 보수적인 운용을 고집해왔지만 소득이 줄어들 시기를 대비해 돈이 스스로 일하는 시스템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70대에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는 그녀가 자신의 약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다시 배우려는 용기다. 박정수에게 주식은 이제 막 정복을 시작한 가장 난해하고도 필연적인 숙제다.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실패담을 넘어 직업적 성실함을 체득한 세대가 자본의 시대를 건너가는 법을 보여준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일확천금이라는 요행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을 차분히 분석하는 자세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채워가는 직업적 태도다. 박정수의 주식 투자는 그녀 또한 시행착오를 겪는 평범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수를 객관화해 시장의 등락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심을 찾고 매 순간을 반추하는 것. 그것이 박정수가 70대의 문턱에서 마주한 자본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