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렸으니 괜찮겠지?”
냉동실 정리를 하다 보면 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한 덩어리가 나오곤 한다. 성에가 잔뜩 낀 채 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언제 넣어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냄새를 맡아볼 수도 없고, 겉모습만으로는 먹어도 되는 상태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얼려뒀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냉동실이 식재료를 완전히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래 보관한 고기는 해동 과정이 잘못되면 위생 문제가 생길 수 있다.
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식중독 발생 건수는 265건, 환자는 7624명으로 집계됐다. 식중독은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집중되지만, 냉장고와 냉동실을 믿고 식재료를 오래 보관하는 습관은 계절과 관계없이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냉동실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냉동실에 넣으면 세균이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냉동은 살균이 아니다. 식재료의 부패 속도와 세균 증식을 늦추는 보관 방식에 가깝다.
일반적인 냉동 보관 온도에서는 세균 활동이 크게 억제된다. 그렇다고 오염된 식재료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냉동 전 이미 오염됐거나,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중간에 온도 변화가 있었다면 해동 순간 위험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가장 흔한 실수는 ‘상온 해동’이다. 단단히 언 고기를 싱크대나 식탁 위에 오래 두면 겉면부터 먼저 녹는다. 이때 표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세균이 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속은 아직 얼어 있는데 겉은 미지근해지는 시간이 길수록 위험은 커진다.
해동은 냉장실에서 천천히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시간이 부족할 때는 밀폐 포장 상태로 찬물에 담그거나 전자레인지 해동 기능을 쓸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해동한 뒤에는 바로 조리해야 한다.
한 번 녹인 식품을 다시 얼리는 습관도 피하는 편이 좋다. 냉장 해동 뒤 짧은 시간 안에 다시 얼리는 경우와 달리, 상온이나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식품은 이미 온도 변화가 커진 상태다. 다시 냉동한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늘어난 세균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진 고기, 생각보다 보관기간 짧다
고기는 종류와 상태에 따라 냉동 보관 기간이 다르다. 덩어리째 보관한 구이용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비교적 오래 둘 수 있지만, 간 쇠고기나 다진 돼지고기는 품질을 생각하면 3~4개월 안에 소비하는 게 낫다.
이 기간을 넘겼다고 해서 곧바로 식중독 식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냉동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면 안전성보다 맛과 식감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냉동실 문을 열었다 닫는 일이 반복되고 식재료까지 가득 차 있으면 냉기가 고르게 퍼지기 어렵다.
다진 고기는 특히 더 신경 써야 한다. 고기를 가는 과정에서 조직이 잘게 부서지고 공기와 닿는 면적이 넓어진다. 같은 고기라도 덩어리 고기보다 미생물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포장 날짜와 냉동 날짜를 적어두지 않으면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
양념육이나 한 번 조리한 음식도 마찬가지다. 냉동실에 넣으면 당장 상하는 속도는 늦출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빠지고 지방 산화가 진행된다. 맛과 냄새가 달라지고, 포장 틈으로 공기가 들어가면 냉동 화상도 생긴다.
냉동실 구석에서 나온 고기가 언제 넣어둔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버리는 쪽이 낫다. 해동했을 때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나거나 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면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음식물쓰레기는 식재료와 분리해야 한다
여름철 날파리와 악취를 막기 위해 음식물쓰레기를 냉동실에 넣는 가정도 있다. 양이 적은 1인 가구에서는 며칠 모았다가 버리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음식물쓰레기는 이미 조리도구, 침, 실내 공기, 포장재 등에 노출된 상태다. 일반 식재료와 함께 두면 교차오염 우려가 생긴다. 봉투가 찢어지거나 국물이 새면 냉동실 내부와 다른 식재료 포장지에 오염물이 묻을 수 있다.
불가피하게 냉동 보관해야 한다면 일반 비닐봉투 그대로 넣지 말고, 밀폐용기에 한 번 더 담아야 한다. 육류나 생선, 냉동밥, 아이스크림처럼 바로 먹거나 조리할 식품과 같은 칸에 두는 것도 피하는 게 좋다. 가능한 한 짧은 기간 안에 배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음식물쓰레기 관리는 냉동보다 배출 전 관리가 먼저다. 물기를 줄이고, 이물질을 제거한 뒤, 정해진 종량제봉투나 전용 용기에 담아 배출하는 방식이 기본이다. 냉동 보관은 악취를 잠시 늦출 수는 있어도 위생 관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식비 아끼려다 더 큰 부담 될 수도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43만3919원이었다. 장바구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식재료 하나 버리기도 아까운 게 현실이다.
냉동실에 오래 묵은 고기를 무리하게 먹는 선택은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식중독은 설사와 복통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만성질환자는 같은 음식에도 더 크게 아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냉동이 세균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증식을 억제하는 보관 방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재료를 냉동할 때는 날짜를 적어두고,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눠 보관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해동한 식품은 가능한 한 바로 조리하는 것이 좋다.
냉동실 구석에 언제 넣어뒀는지 기억나지 않는 식재료가 있다면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오래 보관한 식품을 무조건 아끼기보다 상태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이 식중독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