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개정된 헌법 113조 1항은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 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재판관 정원이 헌재소장까지 포함해 총 9명인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과반이 아니고 3분의 2 이상의 동의, 즉 ‘가중 다수결’ 장치를 둔 셈이다. 다수인 5명이 ‘위헌’이라고 해도 4명이 ‘합헌’이라고 버티면 합헌 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다. 국민의 대표이자 입법권자인 국회가 만든 법률이 너무 쉽게 위헌 판정을 받고 무효화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예방책으로 알려져 있다.
헌재가 내리는 결정에는 합헌, 위헌 말고도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 등이 있다. 1996년 이전에는 ‘위헌 불선언’이란 것도 존재했다. 위헌성이 짙으나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합헌 대 위헌 의견이 재판관 4 대 5로 갈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수 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6명 이상)에 미치지 못해 위헌 선언이 불가한 것이다. 다만 위헌 불선언이라도 그 법적 효과는 합헌과 똑같은 만큼 약 30년 전부터 위헌 불선언이란 용어는 폐기되고 그냥 합헌이라고 부른다.
김영삼(YS)정부 시절인 1996년 새해에 대한민국은 이른바 ‘5·18 특별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으로 뜨거웠다. YS의 지시에 따라 여당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을 주도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헌법상 금지된 이른바 ‘소급 입법’에 해당한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헌재에선 합헌 4 대 위헌 5의 아슬아슬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YS가 발탁한 김용준 헌재소장이 위헌 의견에 가담해 눈길을 끌었다. 동료 재판관들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장께서 YS의 반대편에 서면 자칫 헌재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만류했으나, 김 헌재소장은 “법률가로서 양심”을 앞세워 위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번 변시에 응시해 떨어지면 더는 시험을 칠 수 없도록 금지한다. 이른바 ‘오탈’(五脫) 규정이다. 한 로스쿨 졸업생이 변시법의 해당 조항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여성이고 어머니인 이 졸업생은 “임신·출산을 응시 기간 제한의 예외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주장을 폈다.
헌재는 최근 재판관 4(합헌) 대 5(헌법불합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김상환 헌재소장도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으나 결과적으로 ‘소수 의견’에 그치고 말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국민의힘이 추천한 재판관 4명의 뜻이 관철됐다. 다음에 또 위헌 심판대에 오르면 그땐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