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공항에서 트럼프를 영접한 한정(韓正) 중국 국가부주석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부주석이면 대통령제 국가의 부통령에 해당하니 중국이 트럼프를 그만큼 극진히 대접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 부주석이 중국 국가 의전 서열 8위에 불과한 점을 들어 되레 ‘중국이 트럼프를 홀대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한 부주석이 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불과 한 달 사이에 트럼프와 푸틴이라는 세계 양대 ‘스트롱맨’과 둘 다 대면한 셈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한 부주석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경제 포럼(SPIEF)에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푸틴은 한 부주석에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안부를 물으면서 “러·중 관계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한 부주석도 “양국은 협력과 공조를 강화하며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한 부주석은 ‘부주석’이란 직함에 걸맞지 않게 국가 의전 서열이 8위에 그친다.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최고 수뇌부 7명으로 구성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1954년생으로 올해 72세인 한 부주석은 4년 전인 2022년 10월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 원칙에 따라 상무위원에서 물러났다.
칠상팔하란 공산당 정치국을 개편하는 시기에 나이가 67세이면 계속 상무위원으로 남되, 68세 이상이면 은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2022년 당시 69세이던 시 주석이 오랜 관행을 깨고 3연임을 확정지으며 칠상팔하 원칙은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한 부주석은 시 주석 집권 3기가 시작한 2023년 3월 부주석에 취임했다. 시 주석 본인이 주석에 오르기 전 부주석을 지낸 것처럼 부주석은 나름 중요한 직위다. 다만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다 보니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요즘 중국에서 한 부주석은 ‘정계 은퇴를 앞두고 한직에 보내진 노(老)정객’쯤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베이징에 온 트럼프를 한 부주석이 맞이했을 때 외신이 “의전용·행사용 인물일 뿐”이라며 평가절하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 부주석보다 의전 서열은 낮아도 중국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우리 외교부 장관 해당)이 영접을 했더라면 오히려 구색이 맞았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 정치에서 한 부주석이 차지하는 실제 위상이 어떻든 그는 국가 정상급 인사가 아니면서도 불과 한 달 새 트럼프와 푸틴을 둘 다 대면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우게 됐다. 한 부주석이 정말 의전용 인사에 불과한지 아닌지는 곧 가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