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마을회관이다. 무대 뒤 액자처럼 보이는 무대 위에는 농구 골대가 달려 있고, 양쪽 벽에는 붉은 비상구 등이 켜져 있다. 그리고 회관 바닥에는 한 남자가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엎드려 있다. 곧이어 나타난 여성이 이리저리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남자의 팔다리를 움직인 끝에 그는 비로소 일어선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브. ‘21세기 무용 천재’라는 수식어를 가진 안무가 크리스탈 파이트가 5∼7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한국 무대에 소개한 ‘어셈블리 홀’의 사실상 주인공이다.
파이트는 35년의 안무 경력 동안 로열 발레,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파리 오페라 발레, 캐나다 내셔널 발레 등 세계 정상급 단체를 위해 60편 이상의 작품을 창작한 무용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자신이 이끄는 무용단 키드 피봇과 함께 만든 작품들은 발레 언어를 해체한 현대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무용극이다. 특히 배우가 사전 녹음한 대사를 무용수들이 전신으로 립싱크하는 독창적 방법론과 현실과 환상·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다중 서사가 그의 특기다.
극작가 조너선 영과 함께 만든 2023년작 ‘어셈블리 홀’은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동호회 ‘자애와 보호의 기사단’ 연례 총회를 무대로 삼는다. 중세 갑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가상의 전투를 벌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이 모임은 회원 감소와 부채 증가라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올해도 축제를 이어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의장, 서기, 재무관, 대외홍보위원 등은 각자의 역할을 맡아 발언권을 요청하고 동의와 제청을 반복한다. 어쩌면 학급회의처럼 우스꽝스러운 절차다. 그런데 그 절차의 언어가 쌓일수록 회의는 점점 의식처럼 변한다. 사소한 안건은 공동체 생존의 문제로 커지고 마을회관의 낡은 무대 뒤편에는 중세 신화의 숲이 열린다.
한국 언론과 서면인터뷰에서 파이트는 “이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해마다 지속해 나가는 과정은 점점 이들을 지치게 하고, 내부의 긴장과 분열을 만들어낸다”며 “더 크게 바라보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온 구조들—예를 들면 회의 규칙, 종교, 민주주의 같은 체계들—이 얼마나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연약한가를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무대에 오른 8명의 기사단원은 의장·서기·홍보위원·재무담당 등 각자 역할이 있지만 데이브만 뚜렷한 직책이 없다. 그는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불려온 잉여 같은 존재다. 그러다 퀘스트 축제를 홍보하기 위한 새 이야기 속에서 얼떨결에 ‘이름 없는 기사’ 역을 맡는다. 낡은 투구가 그의 머리에 씌워지는 순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화려한 선율이 터져 나오면서 마을회관은 신화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파이트가 키드 피봇과 함께 만든 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어셈블리 홀’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공동체와 민주적 절차, 신화, 구원 등으로 작품을 설명할 수 있으나 때로는 모호하다. 의미보다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순간이 많다. 시각적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임팩트는 크고 아름답다. 갑작스러운 중세 전투 장면, 분노로 테이블이 뒤집히는 순간 등 중요 장면마다 마치 액션 영화처럼 무용수 동작이 멈추거나 늦춰진다. 파이트는 무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스톱모션과 슬로우모션을 정교하게 구사한다. 마을회관 속 낡은 무대는 거대한 액자다. 그 액자 안에서 중세 기사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테이블이 뒤집히며 의자들이 흩어진다. 인물들은 한순간 현실의 동호회원이었다가 다음 순간 신화 속 인물로 변한다.
파이트와 영의 독특한 연출인 립싱크도 인상적이다. 무용과 연극을 결합해서 ‘탄츠테아터(무용극)’라는 장르를 확립한 피나 바우슈(1940-2009)가 떠오른다. 다만 바우슈의 무용수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방식과 달리 파이트와 영은 목소리와 몸을 분리한다. 배우의 음성은 라디오 드라마처럼 흘러나오고 무용수의 몸은 그것을 살아 있는 더빙처럼 체화한다.
작품은 ‘자애와 보호의 기사단’ 연례총회를 통해 공동체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기사단 존폐를 놓고 가열되는 회의는 점점 민주주의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발언권과 절차와 투표는 갈등을 다루기 위해 마련된 인간의 장치다. 그러나 그 장치가 아무리 정교해도 분노와 무기력과 배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부각되는 건 주인 없는 9번째 의자와 ‘이름없는 기사’다. 아서왕 전설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아서왕 원탁의 빈자리는 성배를 찾을 기사를 위해 비워둔 의자였다. 다만 순수 무구한 기사 갈라하드가 등장하는 전설과 달리 ‘어셈블리 홀’에선 외톨이 데이브가 빈자리를 채운다. 그는 어느 공동체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감없는 1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자,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자, 그러나 바로 그런 인물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이름없는 기사’로 각성한 데이브가 대회관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무대 위 모든 무용수가 데이브처럼 빛나는 투구를 쓴다. 여덟 명의 데이브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들은 함께 움직이다가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어긋나게 하며 하나의 형상을 만든다. 이어 흩어진 몸과 의자와 갑옷 조각들이 모이고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하나의 기사를 완성한다. 공동체란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가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이 잠시 맞물려 만들어지는 불안정한 형상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의장이 빠진 표결에서 데이브는 결국 해산 반대표를 던져 4대3으로 동호회를 살리고 죽는다. 남은 일곱 명은 데이브의 갑옷 조각을 하나씩 나눠 들고 무대 앞에 선다. 흩어진 조각들이 모이면 하나의 기사가 완성된다. 작품은 이렇게 처음과 끝을 하나로 잇는다.
파이트는 이 작품이 ‘인간이 본래 지닌 불완전함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의 이상과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설명한다. 타고난 영웅이 아닌 외톨이가 ‘이름없는 기사’로서 “당신들을 돕겠노라”고 맹세하고 힘겨운 갈등 속에 든 손 하나가 공동체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