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가 투표용지 부족 및 선거준비 부실로 도마에 오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두고 “곪을대로 곪은 환부를 도려내고 처음부터 다시 세우겠다”며 국정조사에 신속히 착수, 다음주에는 개문발차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5대 헌법기관(청와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관위)인 만큼 그동안 독립성이 강조돼왔으나 감시와 견제를 위해 필요할 경우 개헌도 논의하겠다고 민주당은 밝혔다.
한 원내대표는 7일 국회 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는 K민주주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드는 참담한 일이고, 단순한 부실 행정 착오만으로 넘길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사태”라며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긱본을 훼손하는 일이 주권자 국민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투표 현장에서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국회의장께도 (요구서 통과를 위한) 신속한 본회의 개최를 요청하겠다”며 “국민의힘과 내일 국정조사 실시를 위한 즉각적인 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국정조사에서 나아가 재선거까지 요구하는 만큼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진심이라면, 당 지도부가 올림픽공원 집회에 가서 청와대로 가자며 선동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즉각적인 국정조사와 제도 개선에 나서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넘어서 선관위 조직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22대 국회 전반기에 선관위를 소관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의원 다수를 선관위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내정하고, 별도로 선거제도개혁태스크포스(TF)를 당내에 설치해 공직선거법, 선거관리위원회법 등 관련 법률도 전면 검토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현재 윤건영, 이해식, 김성회, 모경종, 임미애, 양부남, 이상식, 이광희, 채현일 의원 등 9명을 국조특위 위원으로 추렸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을 존중해 별다른 견제·감시나 감사원 감사를 피해왔다. 헌법재판소도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선거관리에 관해 다룬 헌법 제114∼116조에는 선관위 위원이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고, 선관위가 법률 안에서 내부규율 규칙을 정할 수 있게 하는 등 독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선관위 직원이 선거철만 되면 휴가나 휴직 건수가 증가한다는 수치가 나왔고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겹치며 선관위의 자정작용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커졌다.
민주당은 필요시에는 개헌까지 열어놓고 선관위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 원내대표는 “감시와 견제 원리가 작동하는지 검토하고, 작동하지 않으면 개헌을 통해서라도 견제받도록 전면적인 (선관위) 재구성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석한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적절한 외부 견제·감독이 필요한데 헌법이 독립된 기관이라고 명시한 이상 감사원법이나 관련 법률 개정만으로는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필요하다면 개헌까지 고민해야 하는 중차대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대로 민주당 역시 필요하다면 특별검사 도입도 검토할 방침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주장하는 재선거에는 법원 판단이 우선이라고 한 원내대표는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측에서 제기하는 무효소송 외에 민주당 내에서도 최민희 의원 등 일부가 “투표용지가 문제된 지역만 재선거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한 원내대표는 “소송 판단 주체는 법원”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서 법원의 신속한 결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