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초청으로 1주일간 독일 베를린과 체코의 프라하를 방문하였다. 독일에서는 외무성 아태국장과 연방의회 소속 국회의원들, 그리고 주요 국제관계 싱크탱크의 연구자들과 1시간 간격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체코에서도 대통령실 외교보좌관이나 전 외교장관 등과 면담을 가졌고, 국제안보 싱크탱크인 글로브섹(GlobSec)이 주관하는 국제콘퍼런스에 참가하여 각국 전문가들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안보 정세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촘촘하게 짜여진 1주일간의 유럽 방문을 통해 유럽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당시 숄츠 독일 총리가 말한 것처럼, ‘자이텐벤데(시대전환)’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는 공통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 도발이나 중국의 급속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 등에 의해 유럽이 새로운 안보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자각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그에 더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감소시키고 국방비 증액 등을 과도하게 요구하면서 나토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을 공통적으로 우려하였다. 그 때문에 유럽의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은 탈냉전시대에 형성된 주요 강대국 간의 협조 관계가 종언을 고하고 있고, 유럽은 스스로의 안보에 대한 새로운 방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유럽 각국에서 국내적으로는 국방예산의 증액 및 방위산업의 재건 등을 추진하는 가운데,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병력 5000여명을 러시아와의 접경 국가인 리투아니아에 배치하였고, 콘퍼런스에 참가한 폴란드 외상이 격한 환영의 뜻을 표했듯이 독일 주둔 미군 5000여명도 폴란드에 재배치하기로 하였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한국이나 일본 등과의 안보 협력관계 확대도 희망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한국도 탈냉전 시대와 다른 안보 정세의 ‘자이텐벤데’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북한은 지속적인 핵 능력 고도화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소위 ‘적대적 두 국가론’을 표방하면서, 탈냉전기에 남북 간에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노골적으로 이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과 ‘포괄적 협력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고 유사시 군사 지원을 상호 약속하면서, 역시 탈냉전 시대에 추진되었던 북방외교의 성과가 퇴색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게다가 러·우 전쟁에 더해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국제사회의 분쟁을 방지해야 할 책무를 가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협력 체제가 동요하는 양상도 전개되고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