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의 한 삼겹살집 앞. 식사를 마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던 시민들과 취재진에게 과자와 음료를 건네자 주변에서는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이어졌다. 바나나맛 과자와 우유, 식혜가 사람들 손에 하나둘 건네졌다.
이번에 화제가 된 것은 엔비디아 CEO의 방한 일정만이 아니었다. 그가 먹고 마신 한국 음식과 음료에도 관심이 쏠렸다.
8일 국가데이터처 ‘2026년 4월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음·식료품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월보다 9.6%, 음식서비스는 7.8% 증가했다. 먹거리 소비가 오프라인 매장과 배달, 모바일 채널을 함께 타고 커진 상황에서 글로벌 CEO의 공개 행보가 특정 제품과 브랜드 노출로 바로 이어진 셈이다.
엔비디아를 이끄는 황 CEO가 한국 방문 기간 삼겹살과 치킨, 냉면, 삼계탕은 물론 바나나맛우유와 식혜, 붕어빵까지 즐기며 ‘K푸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해 ‘치맥 회동’에 이어 올해도 한국 음식을 찾으면서 유통·식품업계는 뜻밖의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황 CEO는 지난 5일 입국 후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만찬을 가졌다. 이후 인근 BBQ 치킨 매장으로 자리를 옮겨 ‘2차’ 회동을 이어갔다.
다음 날인 6일에는 가족 등과 함께 서울 시내 한 삼계탕 전문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삼계탕과 통닭, 파전 등을 먹었고, 인삼주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서울 중구 평양냉면 전문점 우래옥에서 점심을 했다. 오후에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를 관람했다. 현장에서는 BBQ 잠실야구장점의 ‘크런치 순살크래커’ 113박스가 주문됐다.
황 CEO는 시구 전 “치맥보다 좋은 건 없다”고 말하며 한국식 치킨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날 저녁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최 회장과 다시 만났다. 이 매장은 황 CEO가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회장과 ‘치맥 회동’을 했던 곳이다. 야구장 치킨에 이어 저녁 자리도 치킨집으로 잡히면서 그의 한국 치킨 선호가 다시 부각됐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곳은 편의점과 음료업계였다. 홍대 삼겹살 회동 당시 황 CEO와 기업 총수들은 식당 밖에 모인 시민들에게 세븐일레븐·SK하이닉스 협업 제품인 ‘세븐셀렉트 허니바나나맛 HBM칩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팔도 비락식혜 등을 나눠줬다.
황 CEO는 HBM칩스를 즉석에서 뜯어 먹으며 “모두가 HBM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황 CEO가 나눠준 ‘세븐셀렉트 허니바나나맛 HBM칩스’의 6일 기준 일매출은 전주 같은 요일보다 7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와 팔도 비락식혜 매출도 각각 12%, 13% 늘었다.
이 제품은 세븐일레븐과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소재로 기획한 스낵이다. HBM칩을 떠올리게 하는 사각형 옥수수칩에 허니바나나 크림을 입힌 형태다. 반도체 용어가 편의점 과자와 만나고, 다시 글로벌 CEO의 손을 거치며 소비자 관심으로 번졌다.
회동 테이블에 오른 주류도 관심을 받았다. 삼겹살 만찬 자리에는 하이트진로 맥주 ‘테라’와 소주 ‘참이슬’이 놓였고, BBQ 2차 자리에서는 황금올리브치킨에 오비맥주 ‘카스’와 BBQ 자체 탄산음료 ‘스파클링 레몬보이’를 곁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BBQ의 대표 메뉴인 황금올리브치킨은 올해 출시 21년을 맞은 시그니처 메뉴다. BBQ에 따르면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은 5억마리 이상이다. 대한민국 국민 5000만명이 1인당 10마리씩 먹은 셈이다.
황 CEO 일행이 방문한 뒤 BBQ 홍대입구점 매출도 뛰었다. BBQ에 따르면 지난 5~7일 홍대입구점 매출은 전주 같은 요일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주말 피크타임에는 현장 운영과 판매 가능 물량이 사실상 최대치에 가까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통업계는 황 CEO의 동선이 홍대 상권으로 알려지자 현장 영업·마케팅 인력을 배치하고 제품 진열과 재고를 점검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젠슨황처럼’ 문구를 넣은 처음처럼 마이라벨을 배포했고, 하이트진로는 회동 식당에 참이슬과 테라를 선제 공급했다.
빙그레도 홍대 일대 편의점에 바나나맛우유 공급량을 평소보다 2~3배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젠슨 황 먹방’은 단순한 유명인 방문을 넘어선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을 상징하는 인물이 한국의 골목 식당, 편의점 상품, 치킨 브랜드를 직접 소비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퍼졌다. 소비자는 ‘무엇을 먹었는지’를 검색했고, 유통가는 곧바로 재고와 판촉을 조정했다.
특히 이번 행보는 K푸드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도 보여줬다. 삼겹살과 치킨 같은 대표 메뉴뿐 아니라 냉면, 삼계탕, 바나나맛우유, 식혜, 붕어빵, 협업 스낵까지 함께 노출됐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익숙한 ‘한국 음식’의 범주가 식당 메뉴에서 편의점 간식과 음료로 확장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자발적으로 특정 음식을 찾는 모습은 광고보다 빠르게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며 “이번 사례는 K푸드가 제품 자체뿐 아니라 먹는 방식, 장소, 분위기까지 함께 소비되는 콘텐츠가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