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대한노인회장 겸 부영그룹 회장 “삶의 마지막 순간은 병원 아닌 가족 곁에서… ‘재가 임종’ 도입해야” [세계초대석]

67%가 임종 장소로 살던 집 희망
실제론 73%가 의료기관서 생 마감
인간 존엄의 문제… 대안 마련해야

노인 연령 75세로 상향 지속 노력
‘부총리급 인구부’ 전담 조직 필요

집값보다 주거 보장에 정책 초점을
영구임대주택 30% 수준 돼야 균형

공군 시절 받은 은혜 잊지 않고 보답
나눔은 주변 잘 살피고 실천하는 것
“삶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병원 침상이 아니라 가족의 곁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노인 요양원에 갔다가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분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옛날 어른들이 임종을 앞뒀을 땐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함께했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재가 임종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 겸 부영그룹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는 노년의 삶을 단순한 복지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부영그룹 본사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는 태도부터 안정적인 주거, 은혜에 대한 보답, 세대가 공존하는 공동체 의식까지 ‘더불어 사는 가치’에 대한 소신을 내비쳤다. 이러한 철학은 부영그룹의 임대주택 사업과 이 회장의 유엔 및 유엔군 활동, 국내외 각종 기부·장학사업, 출산장려 정책 등 다양한 나눔활동의 바탕이 됐다. 지금까지 부영그룹의 사회공헌 규모는 1조2200억원, 이 회장이 개인 사재로 내놓은 기부액은 2680억원에 달한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 겸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부영그룹 본사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거 안정과 노후 복지, 나눔의 가치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유희태 기자

이 회장은 “과거 셋방살이 시절에는 부엌과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1984년 임대주택법이 제정된 첫해부터 임대주택 사업을 하게 된 데는 누구나 독립된 공간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청년 시절 공군 복무 과정에서 받은 배려와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수십 년간 공군 지원 사업을 해온 사연을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ㅡ노인회장으로서 역점을 둔 활동은 무엇인가.



“취임 후 노인연령을 75세로 상향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기대수명이 많이 늘어난 만큼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인들이 사회의 생산인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유엔데이(10월24일)의 공휴일 재지정과 대한노인회 회원 확대, 중앙회관 건립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ㅡ노인연령을 75세로 높여야 하는 이유는.

“현재 노인 기준인 65세는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만들어졌다. 당시와 비교하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크게 늘었고, 사회여건도 완전히 달라졌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구조다. 2050년쯤 총인구 5000만명 중 노인인구가 2000만명에 도달할 것이다. 미성년자 1000만명을 뺀 생산인구가 2000만명 정도일 텐데, 노인층 부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기준 연령을 상향해 노인인구를 1200만명 수준으로 낮추고 생산가능인구를 2800만명으로 늘려야 국가가 존립할 수 있다. 노인연령을 매년 1세씩 단계적으로 높여 10년 후 75세 체계를 만들고 더 오래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ㅡ‘재가 임종제도’를 제안한 이유는.

“같은 비용이면 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게 좋지 않나. 보건복지부가 2023년 65세 이상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건강 악화 시 희망하는 거주 장소로 약 72.3%가 집을 원했고, 병원이나 노인 요양 시설을 원하는 경우는 27.7%로 나타났다. 생애 말기 장기요양 중인 노인의 희망 거주 및 임종 장소도 각각 78.2%와 67.2%가 집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애 말기 장기요양 수급자의 72.9%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치고,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는 불과 14.7%다. 우리나라도 재가 임종과 복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ㅡ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을 강조했는데.

“인구 문제를 단순히 출산장려 차원으로 봐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 조직은 산업·국토·복지 등 기능별로 나뉘어 있다. 사람의 생애 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이 없다. 어린이와 생산가능인구, 노인인구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설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국방?교육?복지도 결국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 아닌가. 주택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택은 빵처럼 금방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계획을 세우고 공급하기까지 최소 5년, 보통 10∼20년 걸린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100년 단위의 장기계획을 실천할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ㅡ사내 출산장려금 1억원 지급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개인적으로 법률 공부를 하면서 인구 감소 문제를 더 고민하게 됐다. 우리 헌법은 세금을 낼 국민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그 전제가 무너지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게 됐고, 말이 아니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효과가 있다고 봤다. 솔직히 말하면 ‘억’ 소리가 나야 하지 않겠나. 상대방이 체감하는 만족도가 중요하므로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출산장려금은 복지 차원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ㅡ주거 복지 차원에서 영구임대주택 확대도 강조해 왔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상당수가 결국 분양을 전제로 한 주택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집을 사거나 떠나야 하는 구조인데, 이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순수 임대주택과 다르다. 헌법이 보장한 주거권 차원에서 전체 주택의 30% 정도는 국가가 책임지는 영구임대주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소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평생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 있어야 한다. 주택시장은 소유주택 70%, 영구임대주택 30% 구조로 가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ㅡ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한다면.

“중요한 것은 집값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정적 주거 생활을 보장하느냐다. 주택가격을 억지로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 주택을 공급하고 현 거주자들이 주거 불안 없이 지내도록 하는 게 정책의 본질이다. 집값을 잡고 못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뤄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영구임대주택을 전체 주택의 30%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 결국 주택 정책의 핵심은 주거 안정에 있다.”

ㅡ유엔과 한국전쟁의 역사를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

“대한민국은 1947년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의 지원 아래 정부를 수립했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국가를 지킬 수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나라들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가 유엔한국협회장을 맡고 ‘유엔데이 공휴일 재지정’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감사와 보은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한국전쟁 참전국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특별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다. 저는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유엔이 보여준 평화와 연대의 가치, 국제사회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어가길 희망한다.”

ㅡ공군에 밥값 100억원 지원, 순직 조종사 유가족 지원사업 등 꾸준히 호국보훈 활동을 이어온 이유는.

“1960년 군 신체검사에서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당시 군복과 군화가 몸에 맞지 않아서였는데, 그 시절에는 군 복무를 하지 않으면 취업이 쉽지 않아 어떻게든 군에 가고 싶었다. 결국 공군 하사관으로 입대해 5년6개월 복무하는 동안 체격이 크다고 밥을 두 배로 먹게 해주는 등 부대의 배려를 많이 받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공군 지원과 유가족 장학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때 내게 도움을 준 공군 구대장(區隊長, 생활부대 책임자)과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농담처럼 ‘공군에서 5년반 동안 두 사람 몫의 밥을 먹었으니 이제 밥값을 갚는 것’이라고 말한다.”

ㅡ다양한 기부를 꾸준히 실천해 온 동력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임대주택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당시 임대주택은 대게 도시 변두리에 지어서 학교나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전남 순천 연향동만 해도 주민들이 입주했는데 학교가 없어 불편을 겪고 있었다. 교육청에 문의했더니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학교 건물을 지어 기증하게 됐다. 저는 그것을 특별히 기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좋은 일을 했다고 격려해 줬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학교와 교육시설, 문화시설 건립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국 나눔은 거창한 게 아니라 주변의 필요를 살피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ㅡ청년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청년들에게 특별히 더 잘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는 청년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몫을 다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균형과 순리를 지키며 책임을 다할 때 개인이 성장하고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 겸 부영그룹 회장은…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법학 박사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 ●부영그룹 회장 ●건국대 제20대 이사장 ●제17?19대 대한노인회 회장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제13대 유엔한국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