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1주년이 지났지만 노동, 안전, 건강권 보장 등의 영역에서 성평등가족부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출범 이후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부’로 이름도 바뀌었지만 ‘성(젠더)’ 관련 논의에도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평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목숨을 살리는 금융,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 누구의 삶도 포기하지 않는 복지 체계, 그리고 범죄 없는 거리까지. 틈새 없이 두툼한 ‘사회 안전 매트리스’로 국민을 지키는 적극적이고 촘촘한 행정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여성계는 출범 초기에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 범죄 없는 거리 등 성평등 정책을 내겠다고 했지만 성평등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에 여성 부재
지난해 정부 출범 당시 성평등부(당시 여성가족부) 주관 국정 과제에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조직문화 개선을 통한 성평등한 일터 조성 등이 있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관계자는 “성평등부는 성평등임금공시제를 지방선거쯤 해서 발표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고 여성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성평등부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라는 이름으로 성평등임금공시제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조직 내 임금·고용의 성별 현황과 구조를 공개하는 제도로 공공부문과 500인 이상 민간기업에 내년을 목표로 우선 도입될 예정이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을 비롯한 6개 단체로 구성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지난 5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평등임금공시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대회의 측은 “여성노동자 상당수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집중돼 있음을 고려해 공시 의무 대상 범위를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공시 항목도 승진, 모성보호제도 활용 현황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탈모약’ 건강보험 급여화보다 ‘임신중지약’ 품목허가 더 시급
지난해 12월 정부 업무보고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임신중지 약물 도입 필요성에 대해 지적했고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여성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임신중단 약물에 대해 식약처에서 빠르게 유해성 여부를 검토하고 사용을 허용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답변 이후 6개월이 지났고,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성평등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임신중지약 도입 관련 업무를 서로 떠넘기고만 있는 상태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21년 1월 1일부로 임신중절수술은 사실상 합법화됐지만,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이 지연되면서 임신중지약(미프진)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에 속해있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는 “현대약품이 임신중지약 미프진 품목 허가 신청을 벌써 세 번째 하고 있지만 식약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고, 성평등부와의 논의도 진전이 없다”며 “법 개정이 없어도 약물 도입이 가능하다는 법적 자문도 있지만 정부 부처가 모두 일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탈모약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탈모약보다 급한 게 피임약·임신중지약”이라며 “출산·임신중단·난임·완경까지 재생산은 여성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생산권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를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 문화 위한 정책 필요…‘차별금지법’ 실질적 입법 추진해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성가족부가 성평등부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다양한 성에 대해 논의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국정 성과와 향후 개혁 과제를 담아 펴낸 ‘국민이 만든 대전환의 길’에 따르면, 정부는 123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 선진국’ 실현을 위해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 입법에 나서기로 했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여성계는 차별금지법 도입과 함께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정부가 혐오 문제에 대해 심각성 인지했다는 것은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 많은 진전이 있다”면서도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의 법적인 규제로만 가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정부가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낸 보고서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한 만큼 실질적 입법까지 힘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는 “꼭 차별금지법이 아니더라도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범죄, 혐오발언 등)특정 이슈만 부각돼 금지하는 정책만 나오다 보면 반박에 반박이 이뤄지며 저항이 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성평등 정책이 이뤄질 수 없는 만큼 문화를 바꾸기 위한 전 영역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