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의 무대가 넓어지면서 보안 리스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 게임, 웹툰이 해외 시장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산업이 되면서 미공개 콘텐츠와 이용자 데이터는 공격자에게 돈이 되는 자산이 됐다.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6년 4월 발간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은 161조4839억원이었다. 전년보다 2.6% 늘었다. 수출액도 149억582만달러로 5.9% 증가했다. 산업 규모가 커진 만큼 유출 한 번이 공개 일정, 해외 계약, 팬덤 신뢰까지 흔들 수 있는 구조가 됐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25년 상반기 사이버 위협 동향 보고서’도 기업 보안 부담을 보여준다. 2025년 상반기 민간분야 침해사고 신고 가운데 서버 해킹 비중은 51.4%로 가장 높았다. DDoS 공격은 23.0%, 악성코드 감염은 11.1%였다. 콘텐츠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서비스 운영 서버, 협업 계정, 클라우드 저장소가 모두 공격 표면이 될 수 있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겨냥한 공격은 단순한 정보 탈취에 그치지 않는다. 미공개 영상과 음원, 게임 빌드, 계약서, 저작권 자료가 유출되면 직접 손실로 이어진다. 공개 전 콘텐츠가 외부에 퍼지면 마케팅 일정과 해외 플랫폼 공개 전략도 틀어진다.
팬덤 기반 플랫폼은 또 다른 표적이다. 팬클럽, 멤버십, 공연 예매, 굿즈 판매 서비스에는 이름과 연락처, 결제 정보, 활동 이력이 쌓인다. 공격자 입장에서는 재판매 가치가 있는 데이터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 번의 유출이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공격 방식도 달라졌다. 제작사나 관계자로 위장한 피싱 메일, 자동화된 계정 탈취 시도, 클라우드 저장소 접근 시도 등이 동시에 나타난다. 외부 오픈소스와 자동화 개발 도구 사용이 늘면서 개발 공급망 리스크도 커졌다. 콘텐츠 원본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무단 수집하려는 시도 역시 새 보안 이슈로 떠올랐다.
제작 환경 변화도 보안 부담을 키우고 있다. 콘진원 조사에서 2025년 4분기 콘텐츠사업체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32.1%였다. 약 3곳 중 1곳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고 있다는 뜻이다. 활용 사업체 810개사 중 66.2%는 일부 부서에서, 33.8%는 전사 차원에서 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콘텐츠 제작은 원래 외부 협업이 많다. 플랫폼, 기획사, 제작사, 스튜디오, 개발사, 후반 작업 업체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함께 붙는다. 파일과 소스코드, 영상·음원 데이터가 여러 계정과 저장소를 오간다. 글로벌 협업이 늘수록 접속 경로도 많아진다.
문제는 속도다. 제작 일정이 촘촘할수록 보안은 뒤로 밀리기 쉽다. 외부 계정 관리가 느슨하거나 협력사 접근 권한이 오래 남아 있으면, 작은 계정 하나가 내부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콘텐츠 산업에서 보안은 더 이상 전산 부서만의 일이 아니다.
사이버 공격은 한 번 막고 끝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장기간 숨어 있다가 자료를 빼내거나, 공개 일정에 맞춰 서비스를 흔드는 공격도 가능하다. 기획, 제작, 운영, 유통 전 과정에서 상시 점검 체계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보안업계에서는 단일 솔루션보다 상시 관제와 공격 표면 관리, 사고 대응을 묶은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고 외주 제작 비중이 높은 콘텐츠 기업은 계정, 서버, 클라우드, 협력사 접근 권한을 함께 봐야 한다.
SK쉴더스는 관리형 탐지·대응(MDR), 공격 표면 관리(ASM), 모의해킹 등을 통해 콘텐츠 기업 환경에 맞춘 보안 운영을 제공하고 있다.
MDR은 PC, 서버, 네트워크의 이상 징후를 24시간 모니터링한다. 보안관제센터 ‘시큐디움(Secudium)’과 침해사고 대응 조직 ‘탑서트(Top-CERT)’가 축적한 침해사고지표를 분석에 반영해 위협을 판별한다.
ASM은 웹 서비스, 서버, 클라우드 자산, 계정 등 외부에 노출된 진입 지점을 먼저 확인하는 방식이다. 공격자가 보기 전에 기업이 먼저 취약한 문을 찾는 작업에 가깝다. 월 구독형으로도 운영돼 중소 콘텐츠 기업이나 프로젝트 단위 조직도 적용 여지를 넓힐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K-콘텐츠 산업에서 보안은 IP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핵심 경영 전략”이라며 “AI 기반 제작 환경과 글로벌 협업 구조가 빠르게 확대되는 만큼 기획·제작·유통 전 과정에서 상시 보안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