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새만금 AI 밸리

충남 서산간척지는 정주영 신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1984년 6400m에 달하는 방조제 막바지 공사가 거센 조류로 난항을 겪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은 23만t짜리 고철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기발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공기가 계획보다 36개월이나 단축됐고 공사비도 280억원가량 줄었다. 세계 언론들은 전대미문의 ‘정주영 공법’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0년 뒤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라 불렸던 전북 새만금간척사업에서도 이 공법이 빛을 발했다. 이 사업은 방조제가 세계 최장인 33.9㎞에 달하고 바다에서 여의도 면적의 약 140배,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땅을 일구는 대역사였다. 하지만 물막이 공사가 막판에 서산보다 더 센 조류 탓에 난관에 부딪혔다. 현대건설은 정주영 공법을 응용해 유조선 대신 아파트 3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수십t짜리 돌망태를 투하해 공사를 끝냈다.



우여곡절 끝에 방조제가 1991년 첫 삽을 뜬 지 19년 만에 준공됐지만 새만금 땅은 수십년간 방치되다시피 했다. 환경오염 논란과 소송이 끊이지 않으면서 개발공사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역대 정권마다 땅의 용도를 바꾸면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이러니 물을 빼고 바닥을 다지는 매립공사조차 지지부진했다. 지금도 절반가량은 풀만 무성한 황무지나 갯벌로 남아있다. 2023년에는 이곳에서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열었다가 파행을 겪으며 국제 망신을 사기도 했다.

그런 새만금에서 손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5년간 10조원을 들여 인공지능(AI), 수소, 로봇, 자율주행 등을 아우르는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그제 한국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새만금 프로젝트 투자를 요청했다. 젠슨 황은 데이터센터 건설과 AI 연구센터 구축 등을 약속하며 이 단지를 미국 실리콘밸리에 빗대 새만금 AI 밸리로 불렀다. 정 회장은 “젠슨 황 CEO의 창업정신이 (정주영) 선대 회장과 맞닿아있고 마치 할아버님과 같이 일하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새만금이 첨단기술의 메카로 변신, 다시 제2의 정주영 신화가 쓰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