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총포탄은 善人·惡人 구분 안 한다

李 소극 입장인 한·일 군수지원협정
日 과거사와 양국 협력 별개 아닌가
국익·국가안보 앞에서는 양보 없어
평화공존 지지하나 ‘힘’ 뒷받침돼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현실적 필요성은 있으나 과거사, 영토 문제로 인한 국민 정서상 현재로선 수용 불가라는 것이다. 국익·실용 외교를 주창하는 이 대통령 본인 생각이 맞는지 안타깝다.

협정 반대론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불충분한 반성·사과를 든다. 지각변동하는 주변 정세를 외면하는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이 상징하듯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동맹 경시와 달리 북·중·러 결착은 부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부산 미·중 정상회담 직후 미국 수뇌로는 사상 처음 공개적으로 중국을 G2(주요 2개국)라 언급했다. 특유의 터피즘(Turfism), 즉 ‘나와바리(繩張: 영역) 의식’에 따라 서반구(남북아메리카)는 미국, 아시아는 중국, 유럽은 러시아 식으로 세력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착잡한 상황이다.

김청중 논설위원

지도를 보라. 한국은 중국이 해양 진출의 최저 기준으로 삼는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연결하는 제1도련선(島?線) 내에 있다. 민주진영 관점에선 적지(敵地)의 외로운 섬과 같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고도화한다. 중국의 서해 내해(內海)화와 동·남중국해 압박, 중·러의 동해 군사 활동도 가속 중이다. 한국이 포위된 양상이다. 5대 군사 강국이란 자화자찬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게 평가한 미국 글로벌파이어파워(GFP)를 보더라도 1(미국), 2(러시아), 3위(중국)가 주변에 집중해 있다. 31위인 북한도 핵무기를 가졌다. 동맹인 미국,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안보협력 강화가 절실한 이유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14년 총선 당시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별로 안 좋지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연대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것이다. 야권 연대를 비판하는 여당(새누리당)을 공박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나 국제 관계의 본질을 꿰뚫었다. 한반도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할 것인가. 자위대가 대수인가. 수단 방법 가릴 수 없다.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쪽이 정의가 된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대일 기조는 과거사와 별개로 외교·경제·미래 협력은 강화한다는 투트랙(two-track) 전략 아니었나. 과거사를 앞세운 협정 논의 차단이 자가당착으로밖에 보일 수 없다. 유엔군사령부 후방 기지 7곳이 일본에 있어 유사시 원활한 군수지원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도 한·미·일의 다층적, 입체적 협력이 불가피하다.

국제 정세가 급변 중이다. 동지국(like-minded country)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최신판 2022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튀르키예,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 17개국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맺었다. 그중엔 베트남처럼 사회주의국가이자 과거 교전국도 있다. 일본은 물품역무(役務)상호제공협정이라 부르는 이 협정을 11개국과 맺었다. 동맹국인 미국을 포함해 호주, 영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 과거 교전국이 다수다. 국가이익과 국가안보 앞에선 과거를 물을 필요가 없다.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일단 협력 범위를 평시 유엔평화유지군(PKO)이나 다국적군 활동, 인도적 국제구호, 대규모 재난 시 해외국민 이송 등에 국한해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 보수 정권이 남북관계에서, 진보 정권이 한·일 관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2028년 일본 참의원 선거 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상당 기간 논의 시작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선량한 사람이라도 총포탄을 피할 수는 없다. 총탄과 포탄은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구분하지 않는다. 주변이 오판하지 않도록 가용할 모든 힘을 모아 전화(戰禍)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1953년 이래 휴전 체제를 유지한 것도 힘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공존·공동성장도 힘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