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배우 엄지원의 용산 주상복합 아파트와 개그우먼 김신영의 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철제 난간과 ‘발코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부 창과 실내 공간이 바로 맞닿아 있는 구조는 최근 신축 아파트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발코니 확장형’ 설계를 보여준다. 실내 면적을 넓히기 위해 집 안의 완충 지대를 없앤 발코니 확장은 현대 한국 아파트를 대표하는 주거 문화가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렇게 사라진 여백을 다시 집 안으로 들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 왜 발코니를 지웠나…‘확장’이 기본값이 된 사회
발코니는 건물 외벽에 접해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으로, 실내와 바깥을 이어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 베란다는 아래층이 윗층보다 넓을 때 생기는 아래층 지붕 위 공간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아파트나 빌라의 ‘베란다’라고 부르는 공간은 엄밀히 따지면 발코니에 해당한다.
초창기 국내 아파트의 발코니는 지금과 달리 열린 구조였다. 그러나 여름철 장마와 겨울철 한파가 반복되는 한국의 기후에서 개방형 발코니는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빨래를 널거나 짐을 보관하는 수납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겨울철 추위를 피하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발코니에 창문을 다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당시엔 불법이었으나 정부가 1988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 통일과 단열 유도를 위해 창문 설치를 허용했다. 1999년에는 창호를 설치하거나 벽체가 일부 막혀 있더라도 폭 1.5m 이하의 발코니는 전용면적에서 제외하도록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이에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발코니를 완전한 실내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불법을 감수하면서도 보일러 배관을 연결하고 내벽을 철거해 전용면적처럼 활용한 것이다. 발코니 확장에 대한 통제와 단속이 어려워지자 결국 정부는 2005년 다시 한 번 법을 개정해 발코니 확장을 허용했다.
발코니 확장이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법의 허용과 함께 소비자와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발코니는 폭 1.5m까지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아 주민들은 세금 부담을 일부 줄이면서도 실사용면적을 넓힐 수 있다. 건설사도 서비스 공간에 대한 마케팅을 할 수 있고 확장 공사비 명목으로 추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발코니 확장을 전제로 방과 거실을 작게 설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발코니를 그대로 둘 경우 방과 거실이 지나치게 좁게 느껴질 정도여서 입주민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발코니를 확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결과 발코니는 신축 아파트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엄지원이 살고 있는 용산 주상복합 아파트는 처음부터 발코니 없이 설계됐으며, 김신영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도면상 발코니가 있지만 실제로는 거실 공간으로 확장시켜 사용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도 ‘확장 올수리’, ‘남향 확장형’ 등을 주요 장점으로 내세우며 매물을 홍보한다.
◆ 발코니가 사라지며 잃어버린 것들
발코니 확장은 단순히 몇 평의 공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빨래를 널고 물건을 보관하던 발코니는 그동안 집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온 공간이었다.
우선 발코니는 실내와 외부 사이의 심리적 완충지대였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 공기를 느낄 수 있었고, 계절의 변화와 날씨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공간이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곧바로 외부와 마주하는 구조와 달리, 발코니는 집 안과 바깥 사이에 정서적 여백을 만들어 주는 전이공간(transition space)이었다.
발코니가 사라지면서 공간의 개방감은 커졌다. 그러나 외부 창과 생활 공간이 직접 맞닿게 되면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하루 종일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내리고 생활하는 시간도 늘었다. 넓은 시야를 얻은 대신 심리적 여유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발코니는 물리적인 완충 공간이기도 했다. 외부의 열기와 냉기를 한 차례 걸러주며 실내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확장 이후에는 햇빛과 바람이 바로 집안에 들어오게 됐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단열재와 창호의 성능이 오르고, 전열교환기를 통해 창문을 열지 않아도 실내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반영되며 시공 품질이 조금만 소홀해져도 곰팡이 생기는 하자가 발생하곤 한다.
건축적인 변화도 뒤따랐다. 과거 발코니와 난간이 만들어내던 입면의 깊이감과 리듬감은 점차 사라졌다. 대신 평평한 유리 외벽과 직선적인 박스 형태의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도시 풍경 역시 획일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발코니 확장은 효율을 얻는 대신 여유와 다양성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실사용 면적은 넓어졌지만, 집 안과 바깥을 이어주던 중간 공간은 사라졌다.
◆ 발코니의 재발견…취미·휴식 공간으로의 부활
발코니가 사라지며 여유와 완충 공간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발코니를 다시 찾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최근 인테리어 시장을 휩쓸고 있는 ‘남겨진 발코니’의 화려한 변신은 이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확장되지 않은 발코니나 안방 옆 쪽베란다 등이 현대인들의 새로운 아지트로 부활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발코니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민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수납 벤치를 두고 기존 수납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테이블과 소품, 식물을 배치해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꾸미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데크타일, 가벽, 조명 등을 설치해 아늑함과 여유를 즐기는 홈카페로 연출하기도 한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 파라솔을 두고 집 안에서 캠핑 감성을 즐기는 ‘홈캠핑’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이라는 특성을 살려 식물을 가득 채운 작은 정원 형태의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를 구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처음부터 발코니 없이 지어진 통창 구조의 집이나, 이미 확장이 끝난 거실에서도 ‘유령 발코니’를 재창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과거 발코니가 있었을 창가 앞 공간에 거실과 별도로 테이블과 의자 등을 배치하는 식이다. 물리적인 벽은 허물어졌지만, 가구 배치를 통해서라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정서적 발코니’를 부활시킨 셈이다.
이들 공간은 단순한 인테리어 유행을 넘어 집 안과 바깥 사이에 사라졌던 여백을 되찾으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발코니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적어도 거실만큼은 발코니 의무화해야 한다”, “베란다에 화분도 키울 수 있고 자전거, 유모차 등을 놓거나 빨래도 널고 기분 좋은 커피 한 잔도 할 수 있어 활용하기 좋다”, “너무 추운 우리나라 현실 상 발코니가 완충역할을 해줘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 사라진 것은 정말 사라졌을까
‘집에서 사라지는 것들’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주거 공간의 변화는 결국 한국 사회가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포기했으며, 또 무엇을 다시 찾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거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무몰딩·무문선·무걸레받이의 3무 인테리어, 사라진 중앙등의 절대적 지위, 발코니 확장은 시각적 깔끔함과 공간 효율성, 자산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해 온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집 안의 요소들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며 하나둘 지워졌다.
흥미로운 점은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한때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며 없앴던 요소들을 다른 형태로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발코니는 개성을 더한 홈카페와 플랜테리어 공간으로 돌아왔고, 메인등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간의 분위기를 설계하는 다양한 조명이 들어섰다. 체리 몰딩이 있던 공간에는 무·마이너스·평몰딩의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
집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과정은 단순한 유행의 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 시대 어떤 공간을 불편해했고, 무엇을 필요로 했으며, 왜 다시 그것을 찾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의 단면이다.
사라진 것들의 역사는 결국 우리가 집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 되기도 한다. 발코니와 몰딩, 메인등이 사라지고 또 다른 형태로 돌아오는 과정은 주거 공간이 사회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