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노예 민족에게 법과 神을 준 사람”
“한 공동체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질문 가운데 하나다. 그 답은 무엇일까. 힘인가. 군대인가. 돈인가. 아니면 인간보다 더 높은 어떤 질서와 믿음인가. 고대 이집트의 벽돌 굽는 노예들 속에서 등장한 한 인물은 여기에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의 이름은 모세(Moses)였다.
오늘날 그는 유대교의 예언자이자 지도자로 기억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모세는 종교 지도자를 넘어선 존재였다. 그는 흩어진 노예 집단을 하나의 민족으로 조직했고, 공동체를 유지할 윤리와 율법을 전했으며, ‘보이지 않는 신(神)’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 의식을 만들어냈다. 그 점에서 모세는 세계사 최초의 거대한 ‘정신적 국가 건설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원전 13~15세기 무렵의 인물인 모세 이야기는 성서 속에서 극적인 서사로 펼쳐진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시절, 이집트 왕 파라오(Pharaoh)는 히브리 민족의 인구 증가를 두려워해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집트 북동부에서 태어난 모세는 이 명령을 피해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졌고,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역설적으로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게 된다.
◆광야에서 마주한 부름과 떨림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노예 민족 출신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성서는 젊은 모세가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치는 장면을 전한다. 여기까지의 모세는 아직 ‘예언자’가 아니었다. 이후 이집트를 벗어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아가던 그는 불타지만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부름을 받는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내라고 명령한다.
성서 속 모세는 영웅이라기보다 오히려 두려움 많고 망설이는 인물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모세라는 인물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세계 종교의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완벽한 초인이 아니라, 오히려 흔들리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출발한다.
모세는 두려움에 떨다가 신의 근심을 알고 이집트로 돌아가 파라오와 맞선다. “내 백성을 보내라.” 하지만 파라오는 거부한다. 그리고 성서에는 유명한 ‘열 가지 재앙’ 이야기가 이어진다. 강물이 피로 변하고, 메뚜기 떼가 들판을 덮고, 흑암이 땅을 뒤덮는 장면들은 이후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연이은 재앙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성서 안에서는 인간 권력의 오만에 대한 심판처럼 묘사된다. 결국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을 허락한다. 절대 권력도 더 높은 질서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마침내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다. 목적지는 ‘약속의 땅’이라고 불리는 가나안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국경을 벗어나는 마지막 관문에서 거대한 ‘홍해’라는 벽에 부딪힌다.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 온다. “두려워하지 말라.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는 이렇게 외쳤고, 절망 속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들자 물길이 갈라졌다는 이야기는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렬한 종교 서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출애굽, 자유를 향한 원형적 서사
물론 오늘날 역사학과 고고학에서는 출애굽 사건의 규모와 역사성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한다. 실제 대규모 탈출이 있었는지, 성서 기록이 후대에 상징적으로 구성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작동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출애굽은 억압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인간의 원형적 서사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시대와 공동체가 자신들의 고난을 설명하기 위해 모세와 출애굽 이야기를 호출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서조차 모세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노예제(奴隸制)와 차별 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그는 해방의 지도자였다.
이집트를 완전히 벗어나 광야로 나온 히브리인들은 곧바로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한다. 성서에 따르면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다. 배고픔과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흔들린다. 주목할 점은 모세의 위대함이 단지 기적을 일으킨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집단을 끝까지 이끌어 가는 데 있다. 그리고 시나이반도 중앙의 험준한 암산 시내산(해발 약 2,200m)에서 모세는 십계명을 받는다. 흔히 말하는 모세의 율법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이후 공동체 질서를 규정한 종교적·사회적 규범 체계를 가리킨다.
◆시내산의 십계명과 ‘신 앞의 법’
‘살인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오늘날에는 너무 익숙해 보이는 십계명의 문장들이지만, 당시로서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윤리 선언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왕의 변덕이 아니라 ‘신 앞의 법’이라는 형태를 띠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권력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대였지만, 십계명 이후 권력자 역시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질서 아래 있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훗날 서구 문명의 법과 도덕 체계는 이런 유대교 전통의 영향을 깊게 받게 된다.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역시 모세를 중요한 인물로 받아들이며, 그의 이야기는 세계 종교사의 거대한 뿌리가 되었다.
모세의 삶은 영화, 시, 소설, 희곡 등으로 변주되어 예술과 대중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특히 영화는 모세 서사를 반복적으로 재현해 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1956년 제작된 영화 《십계》이다. 찰턴 헤스턴이 모세 역을 맡은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성서 영화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거대한 홍해를 가르는 장면과 시내산의 계시는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운 스펙터클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압도적 장면들이 모세 신화를 현대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등 수많은 작품이 모세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했다. 시대마다 표현 방식은 달라졌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인간은 여전히 자유와 구원의 이야기에 끌린다는 점이다.
◆현대 대중문화가 호출하는 모세
생각해 보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 어떤 질서를 따라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만으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함께 믿는 가치와 규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집단적 기억이 필요하다. 모세는 바로 그 기억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해방 영웅’을 뛰어넘어 혼란스러운 공동체를 끝까지 이끈 지도자였다. 공동체를 ‘민족’으로 만들고, ‘법’을 권력 위에 세우며, 고통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서사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반복적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단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유 이후의 질서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모세의 시대에는 율법과 하나님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