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자무싸’ 나온 감정워치 자신·타인에 감정 속이는 것 확인 참지 말고 상처와 불안 직시할 때 스트레스 줄고 변화된 삶 이끌어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해 표현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이후 감정을 이토록 흥미롭게 다룬 작품은 오랜만이다. 얼마 전 종영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는 ‘감정워치’라는 소품이 등장한다. 맥박, 호흡, 혈압과 같은 신체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기다. 부정적 감정엔 적색, 긍정적 감정엔 녹색이 표시되며 ‘격한 수치’, ‘허기’, ‘흥미진진’과 같은 감정을 언어로 치환해 보여준다.
‘모자무싸’의 감정워치가 확인시켜 주는 건, 인간은 타인만이 아니라 자기 감정에도 잘 속는다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본심을 숨긴다는 게 맞을 것이다. ‘모자무싸’의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은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못한 열등감 때문에 영화계 동료들을 대놓고 질투하고 훼방 놓는 지질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허세로 자신을 포장한다. 자신만만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직업을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영화감독’이라고 쓴다. 그러나 웬걸. 영화감독이라 적는 순간 감정워치 화면에 떠오른 단어는 ‘격한 수치’다. 폭소를 유발하는 장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나대지 않으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감에 발버둥 쳐 온 지독한 열등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황동만뿐 아니라,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다수의 인물은 자기 감정에 잘 속는다. 황동만과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영화감독 박경세(오정세)도 그렇다. 박경세는 왜 그토록 황동만을 싫어할까. 과거 막역했던 황동만과 왜 원수가 된 것일까. 황동만이 자신의 영화를 줄기차게 비판해서? 눈치 없는 행동으로 무리의 물을 흐려서? 사실, 박경세의 (성공했다 평가받는) 데뷔작은 황동만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탄생한 것이었다. 절친의 것을 빼앗아서 성공했다는 자기혐오. ‘데뷔작이 최고작’이라는 소리만 듣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자격지심. 그는 자신의 뾰족한 마음을 황동만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투사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그러나 제대로 정산하지 않고 외면한 감정은 언제고 되돌아 와 정확한 계산을 요구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황동만이 ‘허기’를 느끼는 것처럼,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드라마 PD 변은아(고윤정)가 불안을 떠올릴 때마다 ‘코피’를 쏟는 것처럼. ‘모자무싸’의 인물들만 그럴까. 누군가에게 비수 같은 말을 쏟아붓고 후회한 적이 있다면, 당신 역시 당장의 감정을 오역한 것이다. 우린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박해영 작가는 극 중 변은아가 만나는 정신과 의사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준다. “부정적인 감정은 정확히 읽히는 순간 제어가 돼요. 적어도 망상에 망상을 덧붙여서 점점 더 커지게 하지는 않아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 순간 감정을 딱 정확하게 잡아요. 날뛰지 못하게. 그리고 뿌리를 들어 보는 거예요. 이 감정의 뿌리는 뭘까.”
미국 UCLA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매튜 리버만 연구팀에 따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뇌의 감정 중추인 편도체 활동이 줄어들어 스트레스가 감소한다. 리버만 팀은 이를 ‘감정 라벨링’이라고 명명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유명한 시처럼,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감정도 이름을 얻으면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결국 ‘모자무싸’가 ‘감정 라벨링’의 방법을 알려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방법은 각자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감정에 이름 붙이는 행위를 어색하게 여긴다. 한국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참는 것’을, ‘버티는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해 와서다. 그러나 감정을 버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마음을 구체적인 삶의 언어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감정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는 시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