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직시하고자 한다. 우리들은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 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표명한다.”(고노 담화 일부)
일본의 과거사 3대 담화라고 하면 미야자와 담화(1982), 고노 담화(1993), 무라야마 담화(1995)가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관방장관이 발표한 미야자와 담화는 교과서 기술 시 한·중 등 이웃국가 배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강제성 인정과 사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 지배·침략의 역사 인정과 사죄·반성이 골자다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하원) 의장은 관방장관으로서 내각 의지를 결집한 고노 담화의 주역인 동시에 외무상으로서 태평양전쟁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의 제1조역이기도 하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반발해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 등 보수·우익이 고노 담화의 수정·폐지론을 제기하자 고노 전 의장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부정할 경우 국가 신용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본 정계 비둘기파의 원로 거두인 고노 전 의장이 89세를 일기로 영면(永眠)에 들었다.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화하는 와중에 한·일, 중·일 관계를 중시하고 평화헌법 수호 의지가 강했던 고인의 부재는 동아시아의 평화·안정에 큰 손실이다. 특히 고인은 국가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역사 앞에서 양심과 책임의 무게를 보여줬다. 고노·무라야마 담화로 한·일 관계의 복잡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자성(自省)의 자세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20세기 말 고노·무라야마 담화가 없었다면 21세기 격랑이 몰아치는 국제 관계 속에서 한·일 관계는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고노 전 의장은 생전 남기고 싶은 말을 묻는 일본 매체에 이렇게 답했다. “반성의 중요성과 겸허함이다.” 바다를 넘어 큰 울림으로 남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