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의혹 관리에만 매몰… 참정권 저버린 선관위 [투표지 부족사태 후폭풍]

위철환 선관위장 대행 해명 역풍

“본투표용지 최소 인쇄비율 50%
사전투표율 제외한 개념 알아야
투표용지 분배 실패, 뼈아픈 실수”

전문가 “관리 편의성에 기준 바꿔
투표율 예측 불가인데 미리 정해
납득 불가… 헌법기관 자격에 의심”

사상 초유의 국민 참정권 침해 사태를 초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 앞에 내놓은 해명마저 불신을 키우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11일 투표용지 최소 인쇄비율 기준을 낮춘 배경으로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 인쇄·보관 부담을 들었지만, 선거 관리 편의와 의혹 대응이 국민의 투표권보다 앞설 수 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정선거 의혹을 의식해 투표용지 인쇄를 줄였다가 실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불렀고, 다시 그 해명으로 의혹과 불신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의 모습. 뉴스1

◆“부정선거 의혹 탓” 해명에 더 커진 불신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날 ‘국민께 올리는 말씀’을 통해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하여 참담한 마음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투표용지 인쇄비율 하한선을 60%에서 50%로 인하한 결정 배경에 대해서는 “선거일 투표율 대비 과도한 양의 투표용지 인쇄 시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시달렸다”며 “사전투표율이 증가하고 본투표율이 감소한 지역에서의 하한선 인하 필요성, 짧은 인쇄기간으로 투표용지 인쇄소 확보 어려움 등을 현장에서 호소해왔다”고 설명했다. 2022년 의뢰한 한국행정연구원 정책연구용역과 현장 직원들로 구성된 절차사무개선 태스크포스(TF)의 연구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위 직무대행은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의 직접적인 원인이 인쇄비율 하한선 축소가 아닌 ‘투표용지 분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투표용지 인쇄비율 50%는 사전투표율 23.3%를 제외한 개념으로, 전체 투표인쇄비율은 73.3%”라며 “송파구의 총 유권자수는 56만5368명이고 송파구의 전체 투표율은 65.8%이므로 실제 송파구 전체로 보면 투표용지가 4만2000여매가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송파구 내 146개 투표소별 투표용지 분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고 했다.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직무대행이 11일 검경 합동수사본부 등의 6ㆍ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사태 관련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가운데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관위의 해명에도 전문가들은 국민참정권에 대한 인식과 가치 판단이 결여된 중대한 하자라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의 참정권 행사를 제한해 놓고, 선관위의 관리 편의나 목적성을 따지며 기준을 바꿨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해명”이라며 “참정권을 이렇게 가볍게 인식하는 것은 헌법기관으로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도 “애초에 투표율 예측이 쉽지 않고, 각 투표소마다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국민 중 단 한 명이라도 투표를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는데 투표율을 예측해 인쇄기준을 정하게 놔뒀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지금 투표용지 부족으로 국민 신뢰가 무너지고 각종 의혹을 부추겨놓고, 투표용지가 남으면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핑계”라고 덧붙였다.

선관위 압수수색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 8일 만인 11일 경찰 관계자들이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회의록도 없이 인쇄매수 축소

중앙선관위뿐 아니라 일부 지역 선관위도 투표용지 인쇄기준 축소 의사결정을 정식 위원회 회의를 거치지 않고 날치기하듯 서면의결로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이 서울 25개구 선관위의 ‘투표용지 인쇄매수 축소 결정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송파구선관위와 광진구선관위는 위원회 회의 없이 서면의결로만 선거인수 50% 기준으로 투표용지를 인쇄매수를 축소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위원회가 개최되지 않아 회의록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송파구선관위에서는 회의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일정을 잡기 어려워 회의를 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광진구선관위 측도 “지난 4월27일 안건을 상정했으나 이후 위원회 회의가 열리지 않아 부득이하게 5월7일 서면의결로 처리했다”며 “회의록은 없고, 중앙선관위가 5월11일까지 투표용지 인쇄매수를 의결하라는 지침을 내려 그 일정에 맞추다 보니 서면의결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국민참정권과 직결된 투표용지 인쇄기준이 회의록조차 남지 않은 채 처리된 셈이다.

전북도교육감 선거 개표 과정에서는 전산 입력 오류로 1104표가 누락된 사실도 뒤늦게 파악됐다. 전북선관위에 따르면 전주 완산구선관위는 선거 당일 개표 과정에서 중화산1동 제3투표소 개표 결과를 제1투표소 결과로 오기입했다. 당시 개표 과정에서 도지사·시장 등 다른 5개 선거는 정상적으로 수정됐지만 교육감 선거는 바로잡지 못했다. 이에 따라 1투표소 유권자 1104명의 표가 전산상에서 삭제돼 사표가 됐고, 3투표소의 994표는 1투표소와 3투표소 두 곳에 중복으로 합산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전북선관위는 두 후보 간 득표차가 19표 줄어들긴 하지만, 당락에는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실수와 늑장 대응이 선관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