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살 빠지고 피곤하다면?”
직장인 박모(45) 씨는 최근 들어 퇴근길 지하철에서 졸음을 참기 어려운 날이 많아졌다. 주말 내내 쉬어도 몸은 무겁고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야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수개월 사이 체중이 3㎏가량 줄었다. 식사량이 크게 달라진 것도, 일부러 살을 뺀 것도 아니었다.
피로는 누구나 겪는 증상이다. 체중 변화도 스트레스나 식습관 변화로 생길 수 있다. 다만 이유 없이 피로가 이어지고 체중까지 줄어든다면 몸 상태를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암은 지금도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초기에는 뚜렷한 통증보다 피로감, 식욕 저하, 체중 감소처럼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변화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의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규 암환자는 28만8613명이었다. 1999년 10만1854명과 비교하면 24년 새 2.8배로 늘었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사망원인통계에서도 암 사망자는 8만8933명으로 전체 사망자 35만8569명의 24.8%를 차지했다.
◆침묵하는 몸, 뒤늦게 드러나는 병
암은 초기 단계에서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통증이 심해지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뒤 병원을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 사이 병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몸이 보내는 신호가 항상 분명한 것도 아니다. 식욕 저하, 피로감, 체중 감소,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 흔한 증상이다 보니 몸의 이상과 연결 짓지 못하고 넘기기 쉽다.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최석재 교수는 “암의 공통적이고 중요한 신호로는 체중 감소와 심한 피로감이 있다”며 “위암과 대장암은 검은 변이나 혈변이 나타날 수 있고, 췌장암은 황달과 소화불량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라는 착각
가장 놓치기 쉬운 신호는 피로다. 직장인에게 피로는 익숙하다. 야근, 수면 부족, 스트레스 탓으로 넘기기 쉽다. 그러나 충분히 쉬었는데도 피로가 계속되고, 이전과 다른 몸 상태가 이어진다면 한 번쯤 원인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최 교수는 “피로가 암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는데, 대부분 바빠서 그렇겠거니 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로가 계속된다면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어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체중 감소도 마찬가지다. 식사량이나 운동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계속 줄어든다면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피로감, 식욕 저하, 복통, 혈변, 황달, 오래가는 소화불량이 함께 나타난다면 진료를 미루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피로감이나 체중 감소만으로 암을 단정할 수는 없다. 갑상선질환, 당뇨병, 감염성 질환, 위장질환 등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다만 특별한 원인 없이 증상이 계속된다면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검진 수치가 보여주는 건강 변화
건강검진 결과표도 몸 상태를 보여주는 단서다.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면 단순한 숫자로 넘길 일이 아니다. 혈중 지방 수치가 높으면 혈관에 지방이 쌓이고, 동맥경화를 거쳐 심근경색·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최 교수는 “검진에서 지방 수치가 높게 나왔다면 내 대사 환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약이나 건강식품부터 찾기보다 식생활을 먼저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진 결과표만으로 질환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특정 수치가 계속 나빠진다면 식습관이나 운동량, 음주, 수면 상태 등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양제보다 중요한 식습관
암 예방의 출발점은 일상이다. 국가암정보센터의 국민 암예방 수칙은 담배를 피우지 말고 간접흡연도 피하라고 권고한다.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짠 음식과 탄 음식을 피하는 것도 포함된다. 술은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는 쪽이 암 예방 기준에 맞다.
운동도 기본이다. 주 5회 이상, 하루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걷거나 움직이는 것이 권고된다. 거창한 운동보다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 중요하다.
식탁에서는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이 좋다. 초가공식품은 열량과 당류, 나트륨이 높은 경우가 많고, 포만감에 비해 섭취량도 쉽게 늘어난다. 붉은 고기는 굽거나 태워 먹기보다 삶거나 찌는 방식이 낫다. 탄 음식과 짠 음식은 줄이는 편이 안전하다.
암의 초기 증상은 다른 질환이나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유 없는 체중 감소, 지속적인 피로감, 혈변, 황달, 오래가는 소화불량 같은 변화가 몇 주 이상 이어진다면 단순한 피로로 넘기지 말고 진료를 통해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