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숨진 20대 여성 소방공무원 사망 사건에 대해 직장 내 갑질과 음주 강요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은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고, 이재명 대통령도 철저한 조사와 엄중 문책을 지시했다.
유족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은 11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생전 과도한 회식과 음주 강요, 사적 심부름 지시 등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광주소방본부 소속 여성 소방공무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까지 마쳤던 터라 갑작스러운 사망에 의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A씨 사망 이후 광주소방본부의 대응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광주소방본부는 고인의 사망 직후 공문에 사망 원인을 약혼자 B씨와의 불화라고 적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광주소방본부는 A씨가 숨진 지 일주일 만인 지난해 10월10일 결재한 사망 면직서 공문에 고인의 심리상담 내용을 인용하며 ‘지난 6월 상담 중 남자친구와 불편 호소’라는 문구를 기재했다. 유족은 해당 문구가 사실상 사망 원인을 개인적인 연인 관계 문제로 해석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문서가 내부 인사 시스템에 ‘공개’ 상태로 게시되면서 조직 내 왜곡된 소문이 확산했고, 이 과정에서 유가족과 약혼자가 2차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유족 측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광주소방본부에 강하게 항의했으나 이후에도 실질적인 감찰과 재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생전 음주 강요로 힘들어했다는 A씨의 메시지 등을 근거로 지난달 소방청에 감찰을 요구했다. 본부는 5개월 넘게 감찰을 하지 않다가 유족이 소방청을 방문하자 지난달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날 B씨와 유족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는 A씨가 B씨에게 “나 진짜 많이 마셨엉” “빨리 와유” “죽을 것 같유” 등 힘들어한 정황이 담겼다. 또 “커피랑 술 심부름 시킴” “캐리어 2개 가져가야겠다”는 내용과 함께 해외여행을 앞두고 상급자의 요구로 술과 커피를 사오게 됐다는 취지의 대화도 공개됐다. 이외에 “여기 미쳤어. 술을 너무 빨리 마셔. 오자마자 소맥(소주+맥주) 4잔 원샷” “(남자) 팀장님이랑 둘이 노래방을 가야 할 것 같다” 등 부적절한 회식 문화 의혹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B씨는 “사망 면직서에 기재된 내용으로 인해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 것처럼 알려졌다”며 “사실관계 확인 없이 작성된 문서가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전혀 술도 못하는 사람이 회식에 빠지면 밉보일까 봐 어쩔 수 없이 갔다. 집에 오면 수차례 구토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왔다”며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에 대해 소방본부 차원의 엄정한 엄벌이나 객관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방노조는 조직문화 개선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창석 소방노조 위원장은 “20년 넘게 소방 조직에 몸담았지만 신입 시절 존재하던 구시대적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음주 강요와 직장 내 괴롭힘 의혹, 감찰 부실 의혹에 대해 철저하고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도 직접 진상 규명을 지시하며 최대 수준의 문책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직도 이런 구태 공직자들이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회식 음주 강요 등 소방관의 사망 원인과 경위는 물론 감찰조사 요청 묵살 경위까지 철저히 조사하라. 조사 주체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소방청이 아닌 국무조정실이 맡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조사 결과 음주 강요와 감찰 조사 요구 묵살이 사실로 드러나면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 민사 손해배상 후 구상 청구까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문책을 하겠다”며 “다시는 이 나라에서 회식 음주 강요 같은 직장 내 악성 갑질이나 부정부패 은폐 묵살은 꿈도 꿀 수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