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계는 거센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대한축구협회(KFA)의 행정 운영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졌고,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다. 일부 팬들은 국가대표 경기 보이콧을 주장했고, 대한축구협회를 규탄하는 트럭 시위가 등장했다. 온라인 공간에는 “대표팀 경기를 보지 말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시작되자 풍경은 달라졌다.
한국 대표팀의 조별리그 첫 경기가 열린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과 여의도는 물론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주요 응원 거점은 다시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평일 오전 11시라는 이례적인 경기 시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직장인들은 연차와 반차를 냈고, 대학생들은 강의실 대신 광장을 찾았다. 태극기가 펄럭였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은 도심을 가득 메웠다.
월드컵은 그렇게 다시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광화문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솔직히 화도 많이 났고 청문회도 챙겨봤다”면서도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걸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월드컵은 또 월드컵만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들은 “욕하면서도 결국 나오게 되더라. 이게 월드컵 분위기인 것 같다”, “평일 오전인데도 이 정도 열기면, 월드컵은 월드컵이다”, “논란 때문에 안 보려고 했는데, 막상 경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달라졌다”, “대표팀 선수들은 죄가 없지 않나. 응원은 응원대로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이자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집단적 기억의 무대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는 여전히 강력한 문화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광장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경험은 월드컵을 단순한 축구 대회 이상의 사회적 이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날 대표팀은 팬들의 응원에 결과로 화답했다.
이날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체코와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며 대회 첫 승을 신고했다. 후반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황인범이 자신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후반 35분 오현규가 결승골을 꽂아 넣으며 승부를 뒤집었다.
선제 실점 이후에도 한국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기 막판까지 공세를 이어가며 역전승을 완성했고,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을 만들어냈다”며 선수들의 투지를 높이 평가했다. 월드컵 첫 경기에서 거둔 값진 승리인 만큼 팀 전체에도 큰 자신감을 안겨준 결과였다.
월드컵 데뷔 무대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된 오현규는 “월드컵에 뛰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골까지 넣어 승리할 수 있어 스트라이커로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응원 현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태극기를 흔들며 월드컵 첫 승의 기쁨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