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79)의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10일 개봉)’를 보고 있자면 그의 필모그래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주제와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E.T.’(1982)와 ‘미지와의 조우’(1977)가 품은 우주를 향한 경이,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운명과 통제에 대한 문제의식, ‘더 포스트’(2017)가 겨냥한 국가 권력과 정보 은폐의 정치성, ‘파벨만스’(2022)가 선보인 자기 기억의 영화적 재구성…. 이 목록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디스클로저 데이’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거나 자기복제에 머무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노장이 자기참조적 유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구축하고자 한 구조를 더없이 정교하게 건축해낸 작품으로 보인다. 카메라 뒤의 스필버그가 능청스럽게 윙크를 보내며 ‘그래요. 나는 50년 넘게 영화를 만들었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 같다.
영화는 설명을 최소화한 채 추격 장면으로 진입한다. ‘다니엘 켈너(조시 오코너)’는 비밀 조직 워덱스(Wardex)에게 쫓기는 신세다. ‘노아 스캔런(콜린 퍼스)’이 이끄는 워덱스는 닉슨 행정부 시절부터 미확인 공중현상(UAP)과 비인간 존재의 지구 방문에 관한 기록을 은폐해 온 실체다. 이 조직에서 이탈한 ‘휴고 웨이크필드(콜먼 도밍고)’는 다니엘을 돕고, 세력을 규합해 이 모든 기록을 외부에 공개하려는 ‘디스클로저 데이’를 준비한다. 외계 존재와의 조우에 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는 날이다.
또 다른 축에는 캔자스의 기상캐스터 ‘마거릿 페어차일드(에밀리 블런트)’가 있다. 마거릿은 어느 날 아침 집안으로 날아든 붉은 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후, 타인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날 생방송 일기예보를 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돌연 멍해지더니 딸깍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주변에는 의미 없는 횡설수설로 들리지만, 다니엘만은 이를 즉각적인 암호로 알아듣는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 마라.”
영화는 마거릿, 다니엘, 휴고, 노아 네 인물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속도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추격극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선, 신성, 트라우마, 정보 통제와 진실의 윤리 같은 사변적 질문을 끊임없이 삽입한다.
외계 생명체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영화의 중심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은폐와 해석, 그리고 공개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에 놓인다. 진실이 드러날 경우 인류는 결속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분열로 향할 것인가. 고등한 존재와의 조우가 종교와 신념 체계에는 어떤 균열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함께 제기된다.
결말 장면은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숨까지 멎게 만드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지는 흥분의 순간이다. 관객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영화의 마력을 가장 신실하게 믿는 감독이 바로 스필버그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가 우주라는 주제에 반복적으로 매혹되는 이유 역시, 우주의 압도적 광대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그 안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이상주의적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인류가 실제로 외계 문명과 조우하고 그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게 된다면, 나아가 그들에게 ‘영화’라는 매체를 소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가장 먼저 건넬 한 편의 작품으로 ‘디스클로저 데이’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