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둔 20대 소방관의 비극, 李 대통령 지시에 소방청 배제하고 국무실 투입

사적인 갈등으로 몰아간 사망면직서 기재 논란, 공직 사회 구태 악습 뿌리 뽑는다
숨진 소방관의 유족측이 제공한 카카오톡 화면.

 

직장 내 괴롭힘과 음주 강요 의혹이 제기된 광주 소방공무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고강도 직권 조사에 들어갔다. 소방 당국의 부실한 초기 대응과 사건 축소 의혹이 불거지자 대통령이 직접 국무조정실을 투입하며 공직 사회 갑질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12일 국무조정실과 광주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감찰반은 이날 오후 광주 광산구 하남동 광산소방서를 찾아 현장조사를 벌였다. 당초 소방청이 감찰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조사 주체가 국무조정실로 격상됐다. 국무조정실은 유가족이 제기한 과도한 회식과 음주 강요 여부, 직장 내 괴롭힘 의혹 제기 이후 적절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앞서 광산소방서 소속 여성 소방공무원 A씨는 지난해 10월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였다.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A씨의 약혼자와 유가족은 같은 달 13일 고인이 생전 과도한 회식과 직장 내 갑질 등으로 힘들어했다고 주장하며 광산소방서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 ‘소맥 원샷’ 카톡 폭로와 소방서의 졸속 조사 논란

 

광산소방서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다음 날부터 자체 조사에 착수했으나 7일 만에 ‘특이사항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족 측은 이를 조직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부실 조사로 보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이 '광주소방본부 부조리 조직문화 타파와 고(故) 소방공무원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숨진 여성 소방공무원 약혼자가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이날 유족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는 고인의 생전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A씨는 약혼자에게 “여기 미쳤어. 술을 너무 빨리 마셔. 오자마자 소맥 4잔 원샷”이라거나 “(남자) 팀장님이랑 둘이 노래방을 가야 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임에도 강압적인 회식 문화에 시달렸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상급자의 요구로 해외여행 선물용 술과 커피를 사 와야 했다는 사적 심부름 정황도 포함됐다.

 

사망 이후 소방 당국의 행보는 논란을 더 키웠다. 광주소방본부는 A씨가 숨진 지 일주일 만인 지난해 10월 10일 결재한 사망면직서 공문에 고인의 생전 심리상담 내용을 인용하며 ‘지난 6월 상담 중 남자친구와 불편 호소’라는 문구를 기재했다.

 

◆ 사생활 갈등으로 몰아간 공문, 5개월 방치된 감찰

 

약혼자 B씨는 고인이 숨진 지 2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쯤에야 이를 인지하고 광주소방본부를 찾아가 항의했다. B씨는 “사망 면직서에 기재된 내용으로 인해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 것처럼 알려졌다”며 “사실관계 확인 없이 작성된 문서가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서가 내부 인사 시스템에 게시되면서 조직 내 왜곡된 소문이 확산했고 유가족이 2차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유족 측은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이후 5개월간 별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광주소방본부장과 노동조합 간 면담도 무산되는 등 소방 측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소방본부는 유족이 지난달 소방청을 직접 방문한 뒤에야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소방본부 관계자는 “남자친구 측이 문제를 입증할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해 이를 받아 조사에 착수하려 했지만 자료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 착수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창석 소방노조 위원장은 “신입 시절 존재하던 구시대적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철저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결혼을 앞둔 소방관이 사망한 것 관련 철저한 조사 지시를 내렸다. 연합뉴스

 

◆ 대통령 직접 지시, 민형사상 엄중 책인 조치 예고

 

이번 사건은 이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아직도 이런 구태 공직자들이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조사 주체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소방청이 아닌 국무조정실이 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조사 결과 음주 강요와 감찰 조사 요구 묵살이 사실로 드러나면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 민사 손해배상 후 구상 청구까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문책을 하겠다”고 덧붙였다.